다시 근로활동을 하며 다짐한 것
주말에는 오전부터 밖을 나와 집 근처 스타벅스로 간다. 커피는 똥물 같아도 지금 가장 편한 곳은 여기밖에 없다. 사람들은 진짜 할 말이 많은가 보다. 그들이 동시에 쏟아내는 소리가 울림이 되어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 나도 쏟아낼 말들이 많은데 혼자 떠드는 건 아무래도 무서워 보이니까 그냥 가만히 앉아 있다.
다시 근로활동을 하면서 다짐한 몇 가지가 있다. 회사, 상사의 험담을 동료와는 공유하지 않는 것과 개인 정보와 사생활을 지나치게 떠벌리지 않는 것. 물론 두 번째 사항은 상대방이 물어보면 피할 길이 없어서 되도록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으려 하고 상대방에 대한 질문으로 받아친다. 그러나 나의 이혼 사실을 알게 된(그렇다는 건 이미 다 안다는 뜻이겠지만) C는 본인도 이혼했음을 밝히며 틈만 나면 이혼하게 된 사유와 그 일련의 과정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C가 나와의 동질감을 느끼는 게 분명해 보이지만 나는 그 화두가 낯설어 진지 오래다. 다시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도 않고 더군다나 만난 지 한 달도 안 된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주제는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이혼을 회사에 알리지 않은(그러나 역시 다 알고 있지 않을까 짐작한다) C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계속 그 일을 말하고 싶다는 건 아직 해소되지 않은 무언가가 있는 거겠지.
지금은 회사 상황이나 돌아가는 시스템을 파악하려고 사람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또다시 느꼈다. 나는 낯선 사람과 말하는 게 능숙한 사람은 절대 아니구나.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궁금증이 별로 없구나. 그래서 내가 사회생활을 잘못하는 거구나. 다행히 그것으로 자신을 몰아붙이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지 않다. 적당히 받아치고 적당히 질문하고 상대방의 장점은 치켜세워주고 있다.
이곳은 책상 위에 올려둔 연필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불같이 화내고 소리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그게 조금 웃겨서 남몰래 웃는다. 왜 저럴까. 화낸다고 연필이 저벅저벅 ‘저 여기에 있습니다.’ 하고 걸어오는 것도 아닌데, 정말로 화를 내야 할 순간에 화를 내면 화가 잘 먹혀들어갈 텐데. 주야장천 화를 내면 역시 인상이 더러워지는구나 하고 만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이 자기 맘대로 통제되지 않아 안달 난 모습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어리석은 모습으로 보인다는 걸 왜 저 나이 먹도록 모르는지 의아스럽지만, 내가 모르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주말에 아무것도 안 하고 쉬면 몸이 더 힘들다. 오히려 밖에서 뭐라도 하면 녹초가 된 몸과 마음이 다시 살아나는 신기한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설마 외향인이 된 건가. 그럴 리가. 단지 4평짜리 집이 몹시 갑갑한 내향인일뿐이고 근로를 버티기 위한 회복시간으로 주말이 저당 잡히는 게 억울하고 불안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말 어렵게 취업했지만, 이곳도 언제까지 머무를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고 다음 단계를 생각해야 한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나의 노동이 회사의 이익은 되지만 그것이 고스란히 나의 몫으로 돌아오진 않고 나는 퇴사하면 또다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된다. 이번에는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하는데 역시나 퇴근하면 저녁을 차려 먹을 기운도 없어 단백질 셰이크로 연명하고 씻고 자기 바쁘다.
덕분에 3개월 후의 숙소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알고 있다. 이것이 핑계라는 걸. 진심은 집을 계약하면 2년은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데, 과연 그것이 옳은 선택인지 확신이 없고 두려워서 미루고 있는 것이다. 남을 속이는 재주는 없는 주제에 틈만 나면 나는 나를 속이려 든다. 3주는 확신을 가지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다. 속이는 김에 더 속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