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나는 잘 버티고 있다.
작년 이맘때도 서울에 있었다. 나무 그늘에 앉아서 서 있기도 힘든 날씨에 달리고 있는 미친 자들을 구경했었다.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땡볕 아래에서 온몸이 발갛게 구워진 채로 달리는 나를 상상해 보았다. 이 근처에 살면 저 사람들처럼 미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막 이혼하고 이사 한 동네도 낯설어서 두 발이 허공에 동동 떠 있을 시기였다. 어딜 가도 익숙했지만 동시에 낯설어진 장소밖에 없어서 지난날을 마주할 수 없는 곳이라면, 어디든 떠나고 싶었다. 그런데 여기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1년 뒤 나는 그 공연장 근처로 이사하게 된다.
달리기에 미쳐있는 k는 빗속을 뚫고 22km 달려 나의 숙소로 왔다. 곧 있을 풀마라톤 준비를 위해서였다지만 나를 만나기 위해 그 짓을 했다는 건 무척 감격스러운 일이다. 그의 러닝벨트 안에는 나에게 줄 러닝복 9벌이 비닐에 꽁꽁 싸매어 있었다.
k가 준 (아직은 선정적으로 느껴지는) 러닝복을 입고 한강을 따라 그의 집 근처로 달려가는 것이 나의 목표다. 그러려면 부지런히 집 앞의 공원을 달려야 하는데 공원의 아름다움에 감복하느라 아직 미치지 못했다. 이곳은 발길 닿는 곳마다 나무들이 적란운처럼 피어나 있다. 어렸을 때 동그랗게 다듬은 낮은 나무들이 폭신할 줄 알고 나무 위로 냅다 뛰어든 적이 있다.(엄청 아팠다.) 지금도 나는 담숙해 보이는 나무들을 만나면 언덕을 데구루루 굴러서 그 속으로 풍덩 빠지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지난주에는 공연을 봤다. 몇 달 전만 해도 공연을 보려면 꼭두새벽에 일어나 ktx를 탔고 공연이 끝나갈 즈음에는 막차를 놓칠까 봐 언제나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퇴장하는 사람들을 비집고 지하철역으로 달려가 마침내 ktx를 타면 온종일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이완되어 쓰러지듯 잠들곤 했었다. 이제 공연을 보고 나서 뛰지 않아도 되지만 기차역으로 향하지 않고 숙소로 천천히 돌아가는 기분은 조금 쓸쓸하고 섭섭했다. 나름 기차로 부산과 서울을 오갔던 것도 낭만이었구나. 피곤해 죽을 것 같았지만 그 맛도 쏠쏠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루틴처럼 근처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서 먹었지만, 그때처럼 맛있지 않았다.
그 순간이 행복이었다는 걸 그 순간에는 잘 모르고 시간이 지나 곱씹으면 행복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렇게 매번 순간의 행복을 놓친다. 이 모든 일정이 끝나고 삐걱거리는 에어 매트리스 위에 몸을 뉘었을 때 나도 모르게 행복하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래서 알았다. 지금 행복하구나. 행복하지 않을 내일이 기다리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나를 살뜰히 챙겨주면서 동시에 잡도리를 멈추지 않는 C는 며칠 전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울었다. 나 같으면 울지 않았을 일이다. 짠했다. 그렇게 드세 보이던 C는 사실 여린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곳에서 태어난 것만 같은 사람들 역시 어쩌면 다들 울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던 것보다 나는 잘 버티고 있다. 눈물을 달고 살 줄 알았는데 딱 한 번밖에 울지 않았다.(물론, 숙소에서)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어른이 많이 울지 않았다고 자랑할 곳은 여기밖에 없다. 일이 고되고 자괴감이 들어서 운 것은 아니고 (물론, 일은 고되고 자괴감도 수시로 찾아온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었다. 무례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엄마가 얼마나 나를 귀히 여기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고 동시에 엄마가 알면 참 속상하겠다 싶어서.
자괴감이 들 때면 속삭인다. 아무리 회사가 막돼먹은 좋소라도 내 생계를 내가 책임질 수 있게 되었고 이 나이에 집을 떠나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그걸 지금 내가 해내고 있다고. 게다가 넌 예전처럼 화도 내지 않는다고. 잘하고 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