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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취업 두 달 만에 다시 백수

그렇게 되었다.

by 윤비

울산의 모 대학교 야외 벤치. 비실비실한 남학생이 방금 나에게 비실비실하게 동아리 가입 전단지를 주고 갔다. 보통의 인간은 자신이 속한 바운더리 내에서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 학생은 학교 안의 사람이 모조리 다 학생으로 보이는 법이다. 지금의 내가 어딜 가도 누구를 만나도 모두를 고달픈 노동자로 여기는 것처럼.


지난 2주 동안에 매우 제정신이 아니었고 사실 지금도 살짝 눈이 돌아있는 상태다. 그동안 나는 사이드미러를 접고 강남대로를 냅다 질주하고 골목에 주차된 배달 오토바이를 두 대나 치고 달아났으며 땡볕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평생 흘릴 땀을 다 흘렸다. 매번 끼니를 놓쳐서 눈에 띄는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 아무것이나 먹었고 입에 대지도 않았던 소름 끼치게 단 커피를 퍼마셨다. 온종일 종종거리며 오늘 반드시 했어야만 했던 일들을 마무리하면 퇴근 시간 즈음에 반드시 또 해야 하는 일들이 생겼고 새벽, 밤, 휴일을 가리지 않고 업무 연락이 왔다.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업무는 무한대처럼 돌고 돌아서 나도 돌아버린 것 같았고 그럼에도 어떻게든 있는 힘을 쥐어 짜내며 매 순간을 채웠지만 퇴근하는 순간에는 언제나 열심히 일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있었다.


사무실뿐만 아니라 화장실 안에서도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사람이 고작 화장실 쓰레기통 덮개를 제대로 닫지 않는 것에 매우 화가 난다는 문구를 써 붙인 걸 보고 드디어 처음으로 화가 났다. 이 난리 통에 집 계약 만료일이 다가와서 아침 7시까지 출근을 하고 저녁에 집을 보러 다녔는데 부동산조차 지금 계약하지 않으면 방금 본 집은 나갈 거라고 나를 재촉하는 순간, 여기서 그만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세 사기까지 당할 수는 없었다.


그간 취업하지 못해서 겪었던 괴로움과 돈을 벌 수 있다는 고마움은 생각보다 빨리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이렇게 사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먹고살기 위해 일을 시작했는데 일을 하자 몸이 갈려 나가는 듯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나는 죽을 것인가 보다. 이러한 이유로 급하게 휴가를 써서 울산의 모 대학에 면접을 보러 오게 된 것이고 면접은 불합격했다.


회사에는 이미 퇴사 통보를 한 상태고 부산의 집은 월세 계약 파기를 하여 위약금을 물었다. 상대측은 부피가 커서 서울까지 들고 가기 곤란했던 테이블과 소파 거울 등을 모두 돈을 주고 사겠다고 한 상태였고 그의 어린 딸은 모두가 마다했던 베란다 식물들을 직접 돌보겠다고 나설 만큼 나의 집을 맘에 들어했었다. 아이가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땐 아이와 함께 울고불고 싶은 심정이었고 실제로는 혼자서 울고 불었다.


이 모든 일은 2주 동안에 내가 저지른 일들이며 이곳을 버텨냈으면 모두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나이도 많고 경력도 많아서 취업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데려다가 몸이 갈려 나가도록 부려먹고 그게 싫으면 나가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나는 기꺼이 갈려줄 수는 없었던 것일까. 그깟 담배 연기와 내지르는 고함소리가 뭐라고. 그의 말처럼 여기서 버티지 못하는 인간은(=나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해도 실패하게 될 인간인 걸까.


이 모든 일을 이미 저질러 놓고서도 한동안 정확한 나의 마음을 알 수 없어 갈팡질팡하며 주변 사람들을 곤란케 했다. 섣부른 결정이 아니었을까. L의 말처럼 한 달만 버티면 괜찮아지는 게 아니었을까. 두 번 다시 이런 기회는 오지 않을지도 몰라. 그런데 진짜 이 업계에서 다시 일하기를 바라는 게 맞나. 이렇게 미련이 남는 건 그저 실패했다는 자괴감 때문인가. 서울에 대한 미련인가.


결국 나는 내 일보다 더 자기 일처럼 일자리를 알아본 친구에게 다시 이곳을 다니겠다는 헛소리를 내뱉었고 또다시 번복하며 다시 울산 쪽에 원서를 넣겠노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친구들과 통화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정확히 알게 되었다.


부산을 떠나고 싶었다. 익숙하지만 익숙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딜 가도 끊임없이 나를 상념에 빠지게 했으므로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았다. 이사한 지 1년이 지나도 동네에 정을 붙이지 못했고 다시 해운대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라는 걸 알고 있었다. 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계속해서 나를 과거로 끌어당겼고 나는 끌려다니지 않으려 애썼던 것 같다.

서울은 어딜 가도 낯설고 새롭고 번잡했으므로 상념이 파고들 시간이 없었다. 나에게 무관심한 사람들 틈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건 외롭지만 속이 후련해지는 일이기도 했다. 전에 느껴보지 못한 해방감을 느꼈다. 앞으로 경험하게 될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이 해방감을 놓치기 싫었던 것이다.


이 회사에서 버틸 수가 없고 서울에는 있고 싶은 상태. 하지만 친구가 어렵게 마련해 준 기회를 걷어찰 정도로 내가 이곳에 있어야만 하는 명확한 이유는 없는 상태. 이러한 상태로 일단 내게 다가온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했다. 해보지 않고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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