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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한 나의 인생이여

어찌 되겠지

by 윤비

대학로에서 연극 ‘아마데우스’를 보았고 우리는 몹시 충격을 받았다. 우리의 공통된 의견은 ‘155분 동안 저런 연기를 펼칠 수 있는 인간은 마땅히 돈을 많이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관람만 했을 뿐인데도 온몸의 에너지가 빠져나갔다. 그간 나의 노력은 ‘노력’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 만한 노력이었나? 나는 친구들 앞에서 올해의 인물로 ‘권율’을 꼽으며 이제 나불대기만 하는 나약한 입을 닥치고 진짜 노력을 하겠다고 또 나불댔다.


부산으로 가기 전에 친구들과 짧은 여행을 마쳤다. 나의 길쭉한 얼굴을 굳이 케리커쳐로 그려보았고 공원 피크닉을 하고 언덕에서 대자로 데구루루 굴러 온몸에 풀독을 얻었다. 뜬금없이 K의 근무지를 구경하며 역대 국방부 장관들의 관상을 평가했으며 도중에 차은우를 만날까 봐 살짝 기대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하이디라오에서 (K의 말에 의하면) 전생에 실크로드에 살았던 것처럼 향신료를 환장하듯 먹었고 그렇게 올해 가장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친구들이 빠져나간 텅 빈 방에서 하나, 둘씩 짐을 쌌다. 4박스였던 짐은 어느새 6박스로 불어나 있었다. 짐을 부쳐놓고 혼자서 다시 서울 여행을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매운 냉면을 쎄리러 갔다. 언제나 비빔 냉면파였던 나는 물 냉면파로 전향하려고 몇 차례 평양냉면을 도전했는데 매번 육 향이 도는 차가운 국물에 비위가 상했다. 조미료의 단맛과 짠맛이 가득한 물냉면에 매운 양념장을 듬뿍 넣고 아삭한 오이와 무절임을 잘근잘근 씹어 후루룩 목구멍으로 넘기는 순간 나는 평양냉면을 향한 도전을 깨끗이 포기했다.


잠실에서 청담을 지나 서울숲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종종거리고 뛰어다녔던 거리가 보였다. 안녕. 서울숲도 아름다웠지만 아무래도 집 앞 공원에 마음을 홀랑 뺏겨서인지 시큰둥하게 커피를 마시며 벤치에서 노닥거리다가 예정에 없던 성수동 거리를 걸었고 그곳에서 혼이 나가 버렸다. 이런 곳에서 나는 먹고 마시고 무언가를 살 수가 없다. 안녕.


부산으로 내려가는 날, 마지막으로 공원 산책을 했다. 혼자 서있는 은행나무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살랑살랑 걷다가 갑자기 기다리던 곳에서 합격 소식을 받았다. 신기하게도 간절한 기대를 내려놓으면 늘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나는 다시 서울에서 살게 되었다.


3달 만에 방문한 나의 부산 집은 어제도 머물렀던 듯 신선한 공기가 가득했고 엄마는 애지중지 키운 나의 식물들을 싹둑 댕강 잘라놓고 몇몇의 친구들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풍성하게 키워 놓았다. 커트 머리가 된 애들 앞에서 망연자실했지만, 이 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왔다 갔을 엄마를 생각하면 화를 낼 수가 없다. 예전 집에서 기를 쓰며 모두 들고 왔던 애들이었다. 이젠 미련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한다.


나의 취업 소식을 전해 들은 친구들의 얼굴. 나보다 더 기뻐하고 안도하는 표정들. 나는 그 장면을 눈으로 찍어 내 머릿속에 저장해 두고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한때 전 남편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했던 나는 더 이상 사람을 믿을 수 없었고 결국 혼자서 잘 살아야 한다고 굳게 다짐했었다. 지금도 궁극적으로 인생은 혼자라는 생각은 변함없지만, 뉘앙스가 바뀌었다. 혼자서 잘 살아갈 수 있어야 하지만 함께도 잘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앞으로 들이닥칠 일들이 마냥 희망적이진 않을 것이다. 어떤 길로 들어가게 될지 모르는 건 똑같지만 신기하게도 예전처럼 걱정이 물밀듯이 밀려들진 않는다. 아무 생각 없이 아침부터 매운 냉면을 먹으러 뛰쳐나간 것처럼 이제는 현재의 감정에 충실하고 미래 걱정을 덜 하기로 했다. ‘어찌 되겠지.’ 친구가 걸어준 주문이다. 애쓴들 애쓰지 않은들 인생은 내 맘대로 흘러가진 않을 것이고 예상하지 못한 곳에 다다를 때마다 나는 이 주문을 떠올릴 것이다. ‘어찌 되겠지,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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