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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평에서 6평으로

다시, 서울

by 윤비

어딜 가도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은, 붕붕 떠다니는 기분이 들었었다. 아마도 그것의 시작은 결혼 후에 본가를 방문할 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우리 집 만의 분위기와 루틴이 미묘하게 틀어지기 시작한 어색한 순간을 나는 끝까지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다고 이혼 후 우리 집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번엔 부모님이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래서 나는 한동안 종종 떠다녔다.


이번 추석 연휴에 집에 가지 않고 본가에 머물면서 비로소 편안함을 느꼈다. (물론 현재 내 집에서 와이파이가 안 된다는 사실이 큰 기여를 했지만.) 우리 집은 이제 과도한 음식을 하지 않고 과도한 음주도 하지 않는다. 명절마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가 오셨지만, 큰어머니 혼자 방문하시게 되었고 큰아버지에게 바톤을 이어받은 것처럼 병을 얻은 큰어머니가 홀로 집을 나설 땐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슬펐다.


추석을 보내고 이삿짐 정리를 시작했다. 살림살이가 간결하다 자부했었지만 전부 꺼내놓고 보니 적지가 않다. 32평의 살림살이를 6평으로 전부 옮기는 건 도저히 가능하지 않아서 본가의 내 방에 짐을 구겨 넣을 작정이다. 10년 넘게 키운 20종이 넘는 식물들도 포기하게 되었다. 친구들에게 모두 나눠주고 싶었지만, 그것도 폐를 끼치는 것 같아 결국 당근으로 나눔 하고(차마 돈을 받고 팔 수가 없었다) 서울로 들고 갈 수 있는 애들만 남겨두었다.


짐을 정리하다 힘들면 주방 테이블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집 계약을 2년으로 잡아놓아서 적어도 2년 동안은 이곳에서 바다를 보지 못할 것이고 대신에 빡빡하게 들어선 높은 건물들과 번잡한 상점들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변화를 싫어하는 나는 이혼을 기점으로 변해야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달고 산다.


‘잘 해낼 수 있을까? 이번에도 못 버티면 진짜 x 되는 건데...’ 마냥 기쁘기만 하던 감정은 자연스레 슬그머니 걱정으로 뒤바뀐다. 재빨리 즐거워질 일들에 대해 생각한다. 발레를 등록해서 굽은 어깨를 교정할 것이고 악기 하나를 배울 것이다. 새로운 장소에 가서 처음 먹어보는 음식을 맛볼 것이고 좋아하는 공원이 가을, 겨울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맘껏 걷고 달릴 것이다.


5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삶의 모습이다. 42평에서 32평으로 다시 6평짜리 원룸으로 집을 옮기고 부산 아닌 다른 지역에서 아무도 없이 혼자 살아가는 삶 말이다. 사는 곳의 평수는 좁아졌고 그 덕에 내 마음의 평수는 조금 더 넓어졌다. 5년 뒤에 나는 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3일 동안 이삿짐 정리를 마무리했다. 본가로 돌아와 뒤늦은 저녁을 먹는 동안에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는 부모님을 유심히 관찰했다. 엄마는 언제나처럼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땅콩을 까먹으며 TV를 보았고 아빠는 그 옆에서 뭐가 웃기는지 입을 벌리고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부모님은 여전히 젊었고 순간, 지금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슬펐다.


‘엄마, 엄마는 살찔까 봐 저녁 안 먹는다는 사람이 왜 내가 볼 때마다 저녁에 땅콩을 까먹고 있어? 그거 살찐다고 내가 몇 번을 말해. 적당히 먹어. 그리고 이제 날도 안 더우니까 아침에 공원도 살살 걷고 운동 좀 해.’ 나는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엄마에게 잔소리를 해댔다.


이렇게 길고도 짧은 연휴가 끝이 났다. 지금 창밖에는 도무지 익숙해질 것 같지 않은 살벌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혼자구나. 나이 들수록 불안하고 겁이 많아진다는 엄마의 말에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지만, 사실은 매 순간 겁이 난다. 그럴 때마다 심호흡을 깊게 한다. 괜찮다. 나는 할 수 있다. 아무 일도 아니다. 이 또한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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