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또 뭘 하지
‘실장님...’
지난주부터 출근하지 않았고 그 덕에 아침부터 혼돈에 빠진 막내의 연락이 날아들었다. 올해 1월에 입사한 아이는 기본적인 디자인 업무뿐만 아니라 두 달짜리 실장이었던 나보다 이곳의 업무 프로세스를 놀라울 정도로 알지 못했다. 속은 터지지만 여러 명이 마구잡이로 아무 일이나 시킨 결과인 듯하고 이런 곳에서 8개월을 버틴 게 대견하고 짠하기도 해서 틈이 날 때면 옆에 앉혀놓고 업무 흐름을 설명해 주었었다. 그때마다 대답은 참 씩씩하게 잘하더니.
나보다 일주일 뒤에 입사한 H는 나보다 1주일 전에 퇴사했다. J의 도를 넘는 면박에 2번은 참아도 3번째는 참지 않고 버럭 했던 H가 조만간 J의 강냉이를 털겠구나 싶어 살짝 기대했었는데 그는 모두에게 인사도 없이 퇴사하였다. 화장실에 머무는 시간까지 감시당하는 건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동안 점심을 함께 먹었던 B도 퇴사했다. 5년 동안 이곳에 헌신했던 B의 퇴사도 H처럼 소리소문 없이 이루어졌다. 그는 이곳에서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얻었다.
퇴사를 통보한 후로 나를 유령 취급했던 J가 퇴사하는 날 퇴근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인수인계를 요청했다. J는 내가 하고 나갔어야 하는 일을 조목조목 따졌고 내가 그 모든 일을 다 했다고 조목조목 설명하자 살짝 실망하는 눈치였다. 나를 살뜰히 챙겨주고 잡도리를 멈추지 않았던 C는 J의 심보가 끝까지 고약하다고 혀를 내둘렀고 비로소 벗어난 나를 지하창고로 불렀다.
C는 B와 둘이서 내년에 디자인 기획사를 만들 예정이고 그를 위해 B가 먼저 퇴사했음을 밝혔다. C가 그간 자신에게 이득이 될 리 없는 나에게 마음을 많이 써준 것을 알기에 진심으로 고마웠고 그래서 오랜만에 인간과 포옹을 하였다. 그는 어린아이 대하듯 나의 머리를 몇 번이고 쓰다듬어 주었다. 부디 B와 C의 앞날에 축복이 있기를.
나의 퇴사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소리소문 없이 이루어졌다. 화려한 건물의 뒷골목 구석마다 담배 연기를 내뿜는 사람들이 잡초처럼 박혀있는 동네. 걷는 사람보다 고급 세단과 배달 오토바이가 더 많은 동네. 저녁마다 출근하는 여자들을 마주쳤던 동네. 떠나온 사람과 떠나갈 사람이 많은 서울에서 제일 비싼 달동네 같은 이곳. 나는 이곳에서 제일 맛있게 먹었던 치킨 덮밥을 포장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치킨 덮밥을 반도 먹지 못하고 벌러덩 바닥에 누웠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피곤에 찌든 얼굴로 혼잡한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기분이 좋았다. 가끔씩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가 즐거웠고 절대로 할 수 없었던 것 같은 일들을 그래도 해내는 자신이 놀랍기도 했다. 줄어드는 잔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고 무엇보다 끝도 없는 불안감에 떨지 않아도 되는 내일이 있다는 게 좋았었다. 다시 백수가 되었다. 아무래도 이번 생은 망한 것 같다.
내일은 뭘 해야 하지. 인생 편하게 살려고 다짐하는 순간부터 인생이 꼬이는 사람인데 그걸 알면서도 또 편하게 살려고 해서 이렇게 계속 인생이 꼬이는구나. 9월 한 달은 집 나간 정신머리가 돌아오도록 좀 쉬어가자고 다짐했는데 지금까지 몇 년을 쉬었는데 또 뭘 쉬겠다는 어리광을 부리나 싶어 한심하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눈덩이처럼 불어난 불안감이 결국 나를 집어삼켰다. 나는 또 꽁꽁 얼어붙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래, 이 느낌은 정말 끔찍했었다.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먹고 잠만 잤다. 누군가 얼음은 녹여줄 수 있겠지만 깨고 나오는 건 나만 할 수 있다는 걸 알고는 있다. 나는 깨고 나오고 싶기도 하고 이대로 꽁꽁 얼어버렸으면 싶기도 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노력하지 않았다. 노력하지 않고 행운만 따르길 바랐던 것 같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노력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취업하는 것 말고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없고,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도 끼도 없다. 체력도 좋지 않고 성격은 더 안 좋다. 버티는 건 잘한다고 자부했지만 이젠 버티는 것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고작 일주일 만에 이렇게 와르르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