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벚꽃

벚꽃은 매년 어김없이 핀다.

by 윤비

남편의 확진에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나는 졸지에 슈퍼 면역자에서 부부관계 또한 원만치 않은 사회 부적응자가 되어있었다. 나의 사회성은 확진의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혹평을 받아왔기 때문에 새삼 기분 나쁠 것도 없었다. 다만, 미확진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순식간에 손바닥 뒤집듯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좀 무섭긴 했다.


이러다 한 달 뒤에 미확진자들을 전부 잡아다가 피를 쪽쪽 빨아먹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아니면 우리가 외계인이기 때문에 확진되지 않은 거라며 ‘디스트릭트 9’처럼 분리된 구역에 처넣을지도 모를 일이다. 흠흠. 암튼 좀 두렵네.


피를 빨리기 전에 집 밖을 나섰다. 2016년 이후로 매년 3월이면 친구들과 함께 가는 곳이지만 올해는 남편이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함께 하지 못했다. 운전하면 30분 걸리는 곳을 굳이 1시간 30분 동안 버스를 3번 환승해서 갔다. 운전을 굉장히 싫어하기도 하고(겁이 많다) 한참 벚꽃이 피는 풍경을 대신 눈에 담아 가고 싶기도 해서였다.


버스는 돌고 돌아 한때 공무원이었던 시아버지가 뇌물로 받았다가 쇠고랑 찰뻔했다는 맨션을 지나쳐 (전) 회사의 익숙한 출근길을 올라탔다. 18년 동안 항상 회사에 있었던 시간. 평일 오후 3시. 글을 쓰고 있는 지금에야 그 시간에 버스를 타는 일이 내게는 생소한 일이었음을 인지했고 이제는 생소하지 않은 일상이 된 것을 깨닫는다.


도착한 곳은 여전히 생소하다. 나는 이 슬픔을 줄곧 의심했었다. 이 슬픔을 느낄 자격이 있는지를. 이 슬픔을 표현해도 되는지 말이다.


무릇 친구는 드라마 ‘서른, 아홉’에 나오는 친구들 같아야 한다는 판타지를 품고서 겉으로는 쿨하게 굴던 시기가 있었다. 누구보다 그런 친구를 원했으면서도 누구와도 그런 사이가 될 수는 없는 자신이 좀 싫었었다.


넓은 인간관계보다는 좁은 인간관계의 용량을 가진 나는 ‘깊은’ 관계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고, ‘좁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깊이로 승부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다 ‘깊은’ 관계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하면 혼자 맘을 닫아버렸다. 어렸을 때는 그랬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관계의 깊고 얕음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사적인 영역에서만큼은 싫은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지 않았고 나 같은 사람이 누군가를 주기적으로 만나고 인연을 이어간다는 것은 많이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사실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녀는 대학 친구들 중 한 명이었다. 우리는 졸업을 하고도 다 같이 만나 싱겁게 노는 사이였지만 따로 연락을 하거나 만나는 사이는 아니었다. 만나면 즐겁고 할 말들은 넘쳐났다. 주로 시답잖은 주제가 대화의 팔 할을 이루었지만 모든 관계가 심각할 필요는 없었다.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만남이었다.

그날도 우리는 여느 때처럼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하며 웃고 떠들었다. 몇 달 만에 뼈 밖에 남지 않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지만 혹여나 동정의 눈길을 건네게 될까 봐 애써 모른 척했다.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못했을까. 혼자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고 휩싸였을 그녀에게 난 어떤 도움을 주었나. 줄 생각은 있었나. 그런 내가 감히 슬퍼해도 되는 것일까. 친구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

슬퍼하는 것이 미안했다. 표현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계속 네 생각이 난다. 뭉게구름이 많은 햇빛 쨍쨍한 하늘을 볼 때마다. 이렇게 벚꽃이 피는 계절에는 그걸 한 번 더 못 보고 간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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