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기왕

친애하는 나의 걷기

by 윤비

지난 20년 동안 한결같이 걸어왔던 외길 인생, 나는 ‘걷기왕’이다. 이것은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 하나 없는 내가 자신 있게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것.


걷기는 시간과 걷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누구든 기술과 돈 없이도 할 수 있는 최상의 운동이라 생각한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서 적합한 운동복을 입고 누군가의 지도를 받으며 돈을 쓰는 운동은 정말 나와는 맞지 않았다. 운동만이라도 내가 원할 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만큼 하고 싶었는데 걷는 것은 이 모든 것에 부합되는 운동이었다.


이동을 할 때도 차를 타기보단 걷는 것을 즐긴다. 내게 걸어서 30분~60분 이내의 거리는 당연히 걷는 것이고 2시간이 넘으면 약간 고민한다. 모든 이동시간을 걸음 기준으로 생각해서 차로 이동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맘만 먹으면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걸을 수도 있는데, 몇 년 전 무리하게 걷다 아킬레스건에 염증이 생기는 바람에 이제는 하루 6시간 이상은 걷지 않으려고 한다.


시간이 곧 돈인 세상에서 나의 걷기는 상당한 낭비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사치를 포기할 수가 없다. 걷기가 우울과 무기력함을 누그러트리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걷는다고 해서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들이 없어지진 않지만 걸으면 그 무한하고 쓸데없는 생각들도 같이 움직여서 더 이상 깊게 가라앉지 않게 된다.




동백나무
명자나무
벚나무
조팝나무


4월은 1년 중 가장 걷기 좋은 시기다.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걸어야 한다. 사방팔방에 갖은 종류의 꽃이 지천으로 필 때라 보물을 캐러 가는 기분으로 나간다. 올해 유난히 많이 피었던 동백꽃이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하고 동백꽃을 닮은 명자나무 꽃이 피어난다. 우아한 목련꽃들은 갑자기 사라지고 존재감 없던 개나리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온 세상이 분홍빛으로 물든다. 벚꽃 명소를 찾지 않아도 곳곳에 만개한 벚꽃을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린다. 오밀조밀 귀여운 조팝나무 꽃을 보면 항상 ‘조. 팝.’이라고 소리내어 말해본다. 수수꽃다리가 피어날 준비를 하고 겨우내 숨어있던 수국 새싹이 어느새 돋아나 있다.






나무가 있는 곳마다 직박구리들이 떠들어대서 귀가 아플 지경이다. 직박구리는 성질머리가 꽤나 사나운데 머리털이 부스스해서 귀엽다. 동네 고양이들도 밖을 쏘다니기 시작한다.


나에게 걷기는 운동이자 이동수단이고 치료제이며 활동성을 띄는 유일한 취미이자 유흥이다. 친밀하지 않으면 결코 함께 즐길 수 없는 일이고 혼자임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 두 다리가 허락하는 날까지 나는 계속해서 걷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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