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나의 분류법
사람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뉠 수 있다고 확신한다.
#1 멀찌감치 신호등의 보행신호를 보고 질주하는 사람과 다음 보행신호를 기다리는 사람
나는 기다리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느긋한 성격은 아니다. 외출할 때 남편의 준비가 끝날 때까지 현관 벤치에 꼿꼿하게 앉아 있는 재질이다. 이번에 건너지 않아도 다음 보행신호가 있다는 확실한 미래를 두고 드라마틱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질주를 하고 싶지 않다. 달릴 때 온몸의 덜렁거릴 만한 것들이 덜렁이는 느낌이 불쾌하고 이 일로 에너지를 소비하기 싫다. 기다리면서 주위 풍경과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 내 옆의 인간은 항상 질주한다. 평소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서 사는 것 같지도 않은데 유독 신호를 기다리는 그 찰나의 시간을 아까워한다. 그렇다고 비난하자는 건 아니고(비난의 어조를 숨길 수 없지만) 제발 혼자 뛰라 이거다.
#2 좁은 인도에서 우측보행하는 사람과 방향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사람
우측보행은 어디까지나 권유일 뿐 안 한다고 쇠고랑 차지 않는다. 하지만 좁은 인도에서 우측보행하지 않는 사람을 참을 수가 없다. 좌측보행을 하면서 우측 보행하는 내게 전혀 길을 텨주려 하지 않는 사람들. 와 그럴 때 난 악착같이 나의 방향을 고수한다. 좌측보행을 하더라도 길을 터주는 사람들은 괜찮다. 좌측보행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거나 그냥 그 길이 좋을 수 있다. 어쨌든 그들은 자신의 보행방향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있고 신경을 안 쓴다고 해도 마주 오는 사람의 통행이 방해받지 않게 배려해주는 사람일 테니까.
#3 밖에서 무신경하게 방귀를 뀔 수 있는 사람과 그럴 수 없는 사람
이것은 몹시 화가 난다. 보란 듯이 크게 방귀를 뀌는 사람. 차마 참을 수 없어서 삐져나오는 방귀가 아니라 항문 근처 좌, 우 엉덩이를 타격하며 나오는 그 축축하고 우렁찬 방귀를 뀌는 사람들. 며칠 전 또 당했다. 나는 지나가는 그 사람의 멱살을 잡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그렇다. #1 #2 #3 모두 산책 중의 불쾌함을 견디지 못하고 쓰는 글이다.) 고작 방귀 뀌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지 말란 말이다.
#4 노브라를 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
할머니들 대부분 노브라다. 이들은 당당하게 노브라로 다닌다. 그리고 그 누구도 할머니의 노브라 상태를 비난하거나 힐끔거리지 않는다. 젊은 여자들의 노브라엔 그토록 호들갑 떨면서 왜 할머니의 젖꼭지에겐 관대할까. 세상은 다 같은 젖꼭지 중 유독 젊은 여자들의 것만을 성적 대상으로 본다. 나도 머슬 쳐츠의 암홀 사이로 드러나는 남자들의 젖꼭지를 보는 것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하지만 비난하진 않는다. 취향의 문제니까. 노브라는 그냥 취향의 문제다.
나는 노브라를 선호한다. 하지만 얇은 옷을 입는 여름에는 니플 패치를 붙인다. 노브라를 취향의 문제라고 당당하게 말하면서도 아직은 세간의 눈길을 극복할 용기가 없다. 확실히 예전보다 노브라의 거부감이 사라진 것 같기는 하지만 내가 당당하게 니플 패치를 사용하지 않는 날이 올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