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었던 연애감정
엄마는 일요일마다 나와 언니를 데리고 대중목욕탕에 갔다. 그리고 우리를 아기처럼 품고 머리를 감겼다. 우리를 자신의 품에 안을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나는 매번 머리 감기가 싫어 칭얼대면서도 엄마의 풍만한 가슴과 배의 감촉이 좋아 엄마 품에 파고들었다. 그 포근하고 안락한 엄마 품이 아직도 느껴진다. 내게 소중한 기억이다.
엄마에겐 전투와도 같은 목욕시간이 끝나면 우리는 집에 와서 냉장고에 넣어둔 차디찬 보리차를 마셨다. 그날도 나는 보리차를 마시려고 그 무거운 델몬트 병을(그 시절에는 보통 델몬트 유리병에 보리차를 보관했다.) 꺼내 뛰다가 그대로 미끄러졌다.
엄마는 손바닥이 찢어서 피를 철철 흘리는 나를 둘러업고 동네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때 내 상처를 꿰매야 할 어린 인턴들의 속삭임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들은 나만큼이나 떨고 있었다. 덕분에 내 손바닥에는 작은 상처치곤 큰 흉터가 남았다. 이것이 내 생애 첫 보리차의 기억.
나는 그 보리차 맛을 잊고 살았다. 신혼 때 생수 값이 아까워서 보리차를 끓여 마신 적이 있었지만 그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이었다. 맛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잊힌 보리차가 갑자기 마시고 싶어졌다. 아마도 올해 여름엔 보리차를 생각할 여유가 생긴 모양이다.
산책 후에 냉장고에 넣어둔 차가운 보리차를 꿀꺽꿀꺽 마시는 순간. 아 이 맛이었지. 나는 보리차를 좋아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근래의 여름 음료는 탄산수였다. 탄산을 좋아하지 않지만 탄산수는 어쩐지 세련되고 그럴듯해서 좋아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매번 몇 모금 못 마시고 남편에게 건네 졌는데 보리차는 1L짜리 2통이 이틀 만에 동이 나버렸다.
나는 톡 쏘는 맛보다는 은근하고 구수한 맛을 좋아하는 여자였다. 모든 취향이 그러하다. 템포가 빠른 음악을 들을 때보다 조용하고 차분한 음악을 들을 때 신이 나고 좋아하는 곡이라면 온종일 틀어놓고 듣는 사람. 한번 좋아하면 뭐든지 홀딱 빠져버리는 사람.
그런 나를 잊고 살았다. 출근해서 퇴근하는 일만으로도 나는 내가 너무 벅찼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보다 하나라도 하기 싫은 걸 하지 않는 게 더 중요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들을 외면하며 살았다. 좋아하는 마음도 쓰지 않으면 퇴색된다.
세상 남자들 하나같이 다 똑같다고 우리 쫄랑이(수컷 요크셔테리어)만 괜찮다고 남편도 징그럽다고 외친 내가 요즘 온종일 손석구 생각을 한다. 보리차는 잊고 있던 내 연애감정도 함께 데리고 왔다.
그는 나의 남자 취향이 정말 한결같다는 것을 증명했다. 쌍꺼풀 없는 눈. 소년 같은 미소와 보조개, 하얀 피부, 넓은 어깨. 근데 섹시하다? 그럼 끝났다고 봐야 한다. 심지어 두꺼운 남자 안 좋아하는데 두꺼운 게 좋아 보인다. 계속 남편 가슴 두께를 체크하며 운동을 좀 해볼 생각 없냐고 물어보게 된다. 정해인에 홀딱 빠져 새벽까지 카톡을 나눈다던 박현정과 송보영을 보며 쯧쯧 거렸던 게 고작 몇 개월 전인데 이렇게 손석구를 사랑한다고 진지하게 고백하고 있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할 만큼의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 좋아하는 것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 가장 설렌다. 이제 널리고 널린 게 좋아하는 것들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