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할아버지들
엄마의 아버지는 내가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 돌아가셨고 아빠의 아버지는 아빠가 중학생일 때 돌아가셨다. 그러니까 내겐 할아버지의 기억이 없다. 만일 할아버지들이 살아계셨더라면 어땠을까. 그들과의 추억이 남아있다면 지금의 나는 할아버지들을 덜 싫어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15층의 할아버지는 단 한 번도 마스크를 쓴 적이 없다. 미안한 기색도 없이 언제나 당당하게 엘리베이터 안의 나를 빤히 쳐다본다. 너는 왜 어른을 보고도 인사하지 않느냐라는 압박이 느껴진다. 처음엔 마스크를 깜박한 줄 알았다. 하지만 1년 동안 지켜본 결과 그는 언제나 노 마스크였다.
만일 그가 할머니였어도 이렇게 화가 날까. 나는 진지하게 15층 할아버지 집 현관문에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마스크를 쓰시오’라는 메모를 붙이고 싶은 지경에 이르렀다.
보행 신호를 기다리며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던 여느 오후. 자전거를 탄 할아버지가 노골적으로 내 다리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아.. 정말 싫다고 느끼는 순간 할아버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저기 발목에 뭐가 붙었다고.
순간, 벌레임을 감지하고 제자리에서 파닥파닥 난리 부르스를 췄는데 그건 내 발목 뒤에 새겨져 있는 타투였다. 나는 확인을 위해 타투를 한번 쳐다보고 할아버지를 한번 쳐다봤다. 할아버지는 ‘아~ 문신이네~’
선의로 한 행동이었지만 알면서도 짜증이 났다. 할머니였다면 하핫 웃으면서 문신이에요 했을 것을. 왜 이토록 할아버지가 싫은 걸까. 특정계층을 혐오하는 것에 분노했으면서 나야말로 특정계층을 혐오한다.
핑계를 대자면 지금껏 그저 평범한 할아버지들조차 만나지 못했다. 우선 할아버지의 영역에 들어선 우리 아빠도 특출 난 편에 속하고 아빠도 형제들도 아.. 좀 그렇다. 회사에서 만난 할아버지들은 어땠는가.회장 할아버지는 만날 때마다 그냥 넘어가는 법 없이 성희롱을 했고 거래처 사장 할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 허벅지에 손을 터억 올렸다.
결정타는 남편의 아버지다. 그는 내가 겪은 모든 할아버지의 싫은 점을 똘똘 뭉쳐놓은 엑기스같은 존재였다. 가끔 남편이 그의 아버지와 유사한 행동을 할 때마다 아. 내 결혼은 망했구나 싶다.
가족의 영역에서 함께 생활했던 습관들은 고치기가 힘들다. 딸만 둘인 우리 집에서 아빠는 한여름에도 속옷 차림인 적이 없었고 언니와 내가 쓰는 욕실도 절대 사용하지 않으셨다. 반면 아들만 둘인 시아버지는 내가 화장실이 정면으로 보이는 소파에 앉아있어도 화장실 문을 활짝 열고 소변을 봤다. 나는 봐서는 안 될 것을 보는 대참사는 겪지 않았지만 너무 놀래서 두 눈을 질끔 감고 아버님 문!! 화장실 문!! 소리를 질렀다.
남편 아버지의 에피소드는 너무 차고 넘쳐서 이만하겠다. 여전히 남편의 아버지는 내가 있던 말던 화장실 문을 열고 볼일을 본다. 아버지! 며느리가 있는데 뭐 하는 겁니까!! 소리쳤던 남편도 똑같이 우리 집에서 문을 열고 볼일을 본다.
어쨌든 그리하여 내가 할아버지들을 싫어하게 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것이 확증편향이겠지. 간접 경험으로나마 접한 이상적인 할아버지는 ‘마루코는 9살’의 마루코 할아버지다. 마루코의 아빠는 약간 고길동 스타일인데 할아버지만은 다정하고 귀여워서 나는 마루코와 할아버지의 에피소드들을 가장 좋아한다.
분명 할머니들은 할 수 없는 할아버지의 영역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다정한 영역 안을 경험하지 못한 나는 조금 마루코를 부러워한다. 남은 생 내게 조그만 소망이 있다면 귀여운 할아버지들을 만나는 것인데 아마 성취되긴 힘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