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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지런한백수 Jun 20. 2021

불문과에서 얻은 것 (1)

친구 혹은백수 동지


 2년 늦게 들어간 대학인 만큼 동기들은 대다수 현역이어서 나이 차이가 있었는데 다행히 전공생들끼리만 모이는 패스 패일 교양 시간 때 전공 교수님이 시킨 자기소개 시간에서 유일하게 동갑인 친구를 찾을 수가 있었다. 그녀는 앞으로 이야기에 많이 등장할 텐데, 음, P라고 하자.


 P랑 최근 만나서 한 얘기 중에 꽤 의미적인 이야기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자신이 이 대학과 전공을 선택하며 얻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 하는 자문과 대답이었다. 대학에 들어가 한 학기 다니고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 다른 걸 준비하다 이 전공을 선택한 케이스인 P는 이로 말미암아 자신이 얻은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고 한다. 


 첫 번째는,

 친구였다.


 이에 나도 동의했다. 많은 이들이 대학에선 진정한 친구를 얻을 수 없다고들 하는데 현실적인 백수 생활(및 취준 생활)에 있어서 그런지 대학 학사 과정을 마치고도 여전히 동기들을 자주 만나곤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졸업시기에 떡하니 코로나로 졸업도 미루니 취준이란 명목으로 팔자 좋은 백수들의 모임은 빈번해졌다. 우스갯소리로 학교 다닐 때보단 덜 만나지만 압축도가 더 좋은데? 하곤 하니 좋아해야 할지 대책이 없다 해야 할지 모르겠다.


 코로나가 심했던 2020년 하반기를 제외하곤 1주일에 1번씩 만나고 있는 P와 K, 프랑스어 DELF 고급 과정을 같이 응시하느라 자주 만나고 공부했던 C 그리고 이따금씩 시간에 맞추어 한 번 볼까? 한 마디에 덥석 꼬리를 무는 다른 동기들에 대학 다닐 때보다 사회생활을 더 많이 하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사회에선 나이 차이가 큰 의미 없다는데 원래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동생인 동기들도 크게 개의치 않아한다. 가끔 "야" 소리도 들으니, 아주 편한 동기, 친구들이 틀림없다.


 이번 진로를 뒤엎으면서 울기도 하고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어떻게든 생각과 별개로 마음을 달래는 일이 필요했는데 그 곁에 있어준 것도 동기들이었다. 아마 프랑스어에서 출발한 공통점과 최근 시간을 자주 보냈다는 친밀감에 비롯된 것이었지만 P의 며칠 전 질문에 제일 먼저 친구를 떠올렸던 것을 보면 적잖이 정서적 유대를 공유하고 있으리라. 평소엔 동기란 말을 잘 쓰지 않고 나이와 상관없이 친구라 하는데 이 글에선 전공을 강조하고자 동기로 표현하는 게 이따금씩 거리가 느껴지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이 친구들엔 웃긴 것이 하나 있는데 가끔씩 2명이 아닌 3명 이상씩 만날 때면 자연스럽게 진로나 방향에 대해 얘기를 하다가 똑같이 한숨과 함께 비슷한 말을 내뱉는 것이다. 누구라 할 거 없이 다들 이 말은 공통적으로 한다.


 "전공이 문젠가? 다들 취업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어쩜, 아무도 없어"


 여기서 취업이란 경제적 활동을 뜻하는 게 아니라 원하는 것과 상관없이 시기에 따라 취업만을 위해 움직이는 활동을 말하는데 동기 중에서 구직 활동을 위해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녀석들을 마주하지 못했다. 그럼 이즈음에서 우린 뭐가 문젤까 싶다. 나눈 이유 중 빈번하게 나온 말을 쓰자면.


- 불문과 왔다는 거 자체가 정석적인 취업 자체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 다 예술을 바라고 과에 들어와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이다.

- 돈이 많나?


 확실한 것은, 열심히와 별개로 자유롭고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한 의식이 투철하여 마냥 취업 준비에 시간을 쏟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토익을 보고 여러 자격증들을 취득하고 대외활동을 다양하게 하는 것은 원하는 방향이 있지 않는 이상 의무인 것들이 아니었다.


 사진을 찍고 싶어 실기를 준비하다 아쉽게 되지 않아 예대가 유명하다는 학교에 예술의 나라 프랑스! 하고 불문과에 온 동기들도 몇 있었고 같은 예로 미술을 준비하다 온 친구 및 선후배도 있었으며 베이킹의 꿈을 접었지만 프랑스 르꽁드블루를 염두하고 온 친구도 있었다. 나도 대학 내 예대 영화과를 보고 들어온 것이었으니 다들 불문과 자체가 목적이 아니긴 했다.


 그러나 하나의 줄기로 모이는 것은 예술과 꿈이었다. 부모님이나 교수님들은 속이 터지실지 모르겠으나 다들 마음속 한 곳에 10대의 마지막에 강렬히 원하던 것을 하나씩 품고 성인의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었다. 아마 그만한 꿈을 다시 찾지 못하여 혹은 잊지 못하여 현재에 아직 망설이는 것은 아닐까. 물론 요즘 취업이 너무 힘들어 젊은 시간을 유예 삼아 이것저것 하는 것이기도 하는데 해야 해서 하는 공부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불안할지언정 나중엔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하여 그 누구보다 확신을 가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원하는 것은 언제든 하게 되어있다'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하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이미 그 사람의 관심과 과거의 수많은 데이터와 무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여기서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들먹이고 싶지만 철학적 깊이가 낮으니 패스하겠다.


 졸업을 유예한 지 1학기, 아마 다음 학기도 유예를 할 텐데 동갑인 P와 1주일에 1번씩은 만나 매일 똑같지만 미래에 대한 얘기를 하곤 한다. 말과 생각만 있어 행동적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한 고민을 누군가에게 한 번 말하고 나면 더이상 상대방에게 같은 얘기만 하는 것 같아서 말하지 못하곤 하는데 일단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친구가 있으니 해결이나 답은 없어도 얘기하는 것이다. 그러면 가끔씩 낙천적인 태도나 긍정적인 상상으로 잔뜩 기대에 오를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기도 하다. 그 기운에 집에 오는 길에 검색을 하다가 또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휩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나만 그런 것 같은 불안과 걱정은 이야기를 꺼내고 보니 주변에서 여전히 하고 있는 고민이었다.

유학을 가지 않는 게 좋겠다는 결정을 내리기 전, 아침과 저녁, 밤으로 계속 집 앞 공원을 걸었는데 P와 얘기를 하다 재밌으면서 놀란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작년에 너는 열심히 하고 있어서 진로 고민을 얘기하지 못했어"


 문장으로 쓰니 진지해 보이지만 말은 이보다 더 가벼웠다. 나도 재미로 받아 들이며


 "어머 친구야, 미안해. 내가 너무 열심히 달렸니? 얘기할 친구가 없었겠네"


 놀리듯 대답했지만 P가 얘기를 하지 못했던 건 공감대의 형성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정을 하고 앞으로 가고 있는 이도 불안하지만 무언가 선택을 했다는 지점은 자신과 다르기에. 사실로 P도 나도, 주변의 친구들이 다 취업을 했거나 취업이 빠른 전공의 졸업을 앞두고 있어 진로의 고민을 털어놓을 친구가 동기 혹은 서로밖에 없었다.

 무슨 얘기든 하면 친구들도 열심히 들어주겠지만 그의 처지와 나의 처지가 달랐을 때의 공감력은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아마 그들도 너무 오래 전 고민이라 응원을 해주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2년 늦게 대학에 들어갔지만 비슷한 속도로 나아갈 수 있는 건

과에서 만난 친구들 때문일 것이다. 조바심을 느끼지 않고, 사회에서 내거는 '기준'에 흔들리지 않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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