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6주째입니다.
평생에 걸쳐서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라던데 가끔은 스스로를 아는 게 답답할 때가 있다. 그게 진실이 아닌 것 같다는 것에 대한 의심이 동반하기 때문인데 아는 것과 상반적으로 그를 깨닫고 끌고 갈 수 있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망할. 그래 미래에 대한 확실성, 즉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감과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유학을 가는 것을 접고 깨달았다.
나란 사람, 꽤 공부만 했구나?
여기서 그러나, 하지만을 걸자면 치열한 대학권의 20대처럼 매일매일 공부를 하며 아등바등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름 20살부터 재수와 삼수, 대학 4년과 교환학생 1학기, 유학 준비를 통해 계속해서 공부를 해왔다. 남들과 비교 말고 나만 보자면. 약 7년이니 짧은 기간은 아니다. 그럼 다른 이들은 더한 공부를 이 시간 동안 한다는 것인데 나참. 그들의 목표는 무엇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내게 재수 때 목표는 사실 부모님께 죄송하지만 수능이라기보다 성인이 된 기쁨을 만끽하는 것과 여전히 글, 예술이었다. 글을 쓰기 위해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책을 읽으며 전시회를 가고 친구들과 놀며 대화를 나누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나의 주 목표였다. 삼수 땐 성적과 무관하게 수능에 집중하였다. 대학 4년간은 성적 장학금을 받기 위하여 얼마나 애썼는가? 입학 때 아빠가 내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보다 성적장학금을 타. 그게 진짜 돈 버는 거고 나중을 위해서도 좋아. 용돈은 아빠가 줄게"
조건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이는 용돈을 타기 위해서라기보다 아빠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까닭도 있었다. 아 물론, 오로지 아빠만을 위한 건 아니었다. 실질적으로 대학에 다니며 받은 용돈은 한 달 30만 원 남짓이었다. 돈을 많이 쓸 일도 없었던 내겐 스스로가 더 나아지는 것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그런 이유로 유학을 준비하는 긴 시간이 만족스럽지 않아 그만두기도 하였으니 중간중간 만족감과 발전됨을 느끼기 위한 갈증을 만족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조금만 노력하면, 좀 더 노력하면, 이란 말로 1학년을 제외한 3년을 나름 열심히 보냈다. 대학생에게 시험을 잘 보는 것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나! 중간중간 언어 자격증 시험도 봤으니 4년간 불어에 착 달라붙어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시간이 지나 새로운 결정을 하려 하니 원하는 것과 해왔던 것 사이에서 혼란이 오는 것이다.
이래서 사람들이 나이를 먹을수록 보수적이게 되고 해온 것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인가 보다. 반성한다. 그런 이들을 내심 도전정신이 없네,라고 치부했다. 어리고 오만한 젊은이다.
그래서 또다시 돌아 질문이다. 그래서 무얼 하고 싶으냐?
무얼 하고 싶습니다.라고 했을 때 그 열망과 흥미, 관심으로 새로운 도전을 스타트하면 될 것을 과거에 공부만 했던 시간들이 출발선에 선 이의 발목도 아니다, 아주 거슬리게 묶여 있는 운동화 끈이 좀 길어 대롱거리는 것 같은 거슬림으로 계속 신경을 건드린다.
이 팔팔한 20대에 공부를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아빠나 사회는 27살이면 나이가 들었다고 할 수 있지만 100세 인생에 27살은 고작 1/4 남짓인데(앗? 1/4이라고?) 몇 년 정도 나중을 위해 시간을 더 투자할 수 있지 않을까? 자문한다. 그럼 대답은 늘 같다. 그래! 할 순 있지! 그러나 또 답문이 돌아온다. 근데 어차피 같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면? 원하는 것을 하는 게 낫지 않아?
그렇다. 지금 모든 문제는 모든 선택의 출발선이 10도, 20도 아닌 0이라는 것이다.
미치고 활짝 뛸 노릇이다. 후회를 안 한다는 성격이라곤 했지만 영어를 하지 않은 것은 후회요, 친구들이 뭐 할 때 같이 하면서 왜 토익은 하지 않았는지도 후회이며 불어 신경 쓰듯 영어도 좀 하지 하는 것도 후회다. 아마 영어에 대한 갈증은 언어에 대한 갈증보다 지금 무언가 하기 위해선 결국 영어가 중요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무언가 시작해서 조금이라도 익히기에도 모자란데 아직 결정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몸을 일으키지 못하니 무기력이 육체와 정신을 엄습한다. 이렇게 길고 큰 무기력은 20대 초반 이후 처음이다. 무기력을 안고 살 여유가 없었다. 번아웃과 무기력을 마주할 만큼 그리 열심히 살았나? 내 기준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잠시 관대하게 스스로를 보면 아니었나 보다. 남들이 자격증을 딴 것만큼, 대외활동을 한 것만큼은 없지만 내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나는 나름 내가 하고 싶은 일의 방향으로 할 수 있는 것들에 최선을 다했다. 그것이 지금 일반적인 취업과 방향과는 일치하지 않아 0인 것일 뿐이다. 그를 스스로가 모르다니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무지는 자아를 괴롭힌다.
그러면 일단 영어와 불어는 취업을 떠나 어떻게든 써먹을 수 있으니 이부터 시작하자. 그리고 쓰고 싶은 글과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자. 하고 모처럼 책상에 앉아 A4용지를 꺼냈다.
6개월 플랜.. 아니 3개월 플랜.
스스로에게 계속 최면을 건다.
열심히 살았다. 누가 뭐라 해도 넌 열심히 살았다. 다만 그것이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는 걸 5월에야 깨달은 것이다. 아직 스스로에게 시간을 더 주어도 된다. 후회 없이 보내자.
그러나 불안이 똑똑, 다가온다.
벌써 그렇게 지낸 지 2달이 되어가. 6월 30일이 지나고 7월 1일이 되면 어느새 고민한 지 2달이 되어가는 걸? 고민이란 방패 뒤에 숨어 언제까지 화살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아?
문을 열어주지 않을 수 있다면 문을 닫고 방에 들어가 이어폰을 끼고 소리를 막고 싶다. 그러나 마음의 소리는 저 깊은 곳까지 내려가 묻는다.
그래그래 알겠어, 하면 되잖아. 나도 열심히 살고 싶어. 일단 못 정하겠으니까 다 해볼게!
그러나 그 망할 목표의식이 일어서려는 나를 막아 세운다. 저리 좀 가. 사람들은 동기부여 없이 일단 해야 하니까 하기도 한다고. 너를 안다는 자만으로 너의 앞길을 막지 마.
산책을 하다 보면 자아가 빨주노초파남보 한 7개 이상은 나오는 것 같다. 마치 나선을 빙글빙글 돌며 올라가고 내려가고를 반복하기도 한다. 그러다 긍정적인 호르몬에 희망을 가질 때가 있는데 잠시 겁이 나면 드는 생각은 하나다. 강렬하게 원하지 않아서 해온 것을 뒤로하지 못한 건 아닐까? 이 문장은 아주 마법의 문장이다. 무기력의 세계로 다시 뻥 차 버리는.
어쩌면 다시 시작하는 게 무서운 이유는,
예측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보다는 열심히 해온 시간을 뒤로하고 또다시 열심히 할 자신을 가지지 못한 것은 아닐까.
그런 거라면 계속 말해주어야겠다. 그동안 수고했으니 괜찮다고. 또 할 수 있을 거라고. 눈에 보이는 걸 중시 여기지 않았듯 스스로의 그런 점도 존중해주면 된다고. 자신에게 엄격하지 말고 심리적인 면에선 관대해져도 괜찮노라고. 그렇게 하여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