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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빛푸를은 Sep 30. 2021

Over Thirty

30이라는 바보스러움

오버 서티 

옛날에 이태원 어느 골목을 지나다가 over thirty 라는 간판을 보았다. 사실 Thirty 인지, forty 인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도 forty 인것 같다. 그걸 보고, 30대였던 내가 못가는 저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온라인에 카페를 만들었다. 단지 카페 이름이 Over Thirty 였는데, 내가 만든 카페는 나이가 아니라 열정지수를 의미했다. 물론 나이 30세 이상의 의미도 있었지만, 열정 30이라는 뜻이 훨씬 좋았다. 각자의 열정을 쏟는 것들에 대한 글을 쓸 수 있는 게시판을 만들어주고, 자신의 열정을 나누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처음에는 이게 뭘까 하여 사람들이 많이 다녀갔는데, 점점 카페는 잊혀졌다. 그리고 17년이 지난 오늘 오늘 카페를 없애려고 들어갔는데 회원이 나포함 2명이어서 누가 아직 여기에 남아있나 보았더니 내 절친이다. 왜 아직도 여기에 있을까? 그 포털을 잘 이용을 안해서? 친구가 슬퍼할까봐? 아니면 귀찮아서? 

아마도 귀찮아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마지막 글이 올라온 해는 2004년이다. 그 글을 읽으니 그때는 느끼지 못하고 몰랐던 감정이 미묘하게 숨어 있는 것을 알았다. 왜 그때는 그 감정이 하잖고 귀찮게 느껴졌을까? 지금 보니 분명하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을 왜 그때는 몰랐을까? 17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본다. 그런데 다 소용없다. 17년전의 사람들 중에는 아예 누군지 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고, 기억은 나지만 지금은 무엇을 하고 사는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누군지 어디에 사는지도 알지만 별로 연락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물론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오버서티의 카페 회원이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버서티는 분명한 차별이다. 일종의 노키즈존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까. 노키즈존에 대해서 분명한 거부감이 있는 지금의 나는 예전의 오버서티를 만든 철없는 30대가 별로다. 조금 부끄러워진다.


카페를 없애려고 오래된 까페에 들어갔다가, 누군가 올려준 시를 하나하나 읽으니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그리고 그 시들이 가리키는 곳에 나의 30대가 있었다. 


오래도록 활자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밤을 잃고 

오늘도 하얗게 종종 걸음으로 따라간 그곳에서 길도 잃었다. 

불안하고, 갈 곳 모르는 어두운 20대만 있었는줄 알았더니 

세상 모르고 철부치처럼 딴 곳만 바라보다가 옆에 누가 있는지도 몰랐던 바보 같은 사람이 거기 있었네. 


그래도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와 

오늘을 함께 했던 세상의 문도 닫아야지. 


이제는 매일 매일이 over Thirty 이지만, 더 이상 그 문은 열지 않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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