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아이스 아메리카노
우아한 유령이 흘러나온다. 좋아하는 곡이라 아침에 자주 틀곤 한다. 노란 등을 하나둘씩 켜고 커피머신에서 쏴아- 스팀을 뿜어낸다. 마치 곧 출발할 기차 같다. 창문이 하나 둘 열리고 묵직한 입간판도 가게 앞으로 옮긴다. 위잉- 커피 그라인더가 돌아가고 정신을 깨우는 익숙한 향기가 퍼져나간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 몇 번에 끈적하고 진한 에스프레소가 뿜어져 나오고 짜라랑- 투명한 얼음물 위에 부어진다. 오늘의 첫 커피가 막 내려졌다. 이제 곧 나와 당신들의 이야기가 시작될 거라는 뜻이다. 어떤 커피와 어떤 이야기가 이 공간을 채우고 또 흘러갈까? 당신의
커피 잔은 어떤 이야기로 채워지게 될까? 쓰고 진한 커피? 부드럽고 달콤한 커피?
언제나처럼 단골손님이 9시 정각에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우리는 무언의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아메리카노 하나요.’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이 사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루 걸러 하루 꼴로 이곳에 와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해 가져간다.
아주 조용하고 가장 오래된 단골손님이다. 딱 한번 카페 1주년이 됐을 때 선물을 건네었더니 축하한다는 말을 들었다. 편한 옷차림으로 방문하곤 하는데
가끔 자전거를 타고 올 때도 있다. 키가 아주 크고
눈도 아주 크다. 마른 체격에 나이는 많아야 40대
초반정도 일 것 같다. 낯선 사람의 외모를 관찰하는 게 다소 실례되지만 나는 얼굴과 메뉴로 사람을
기억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해 본다.
항상 같은 메뉴를 시키는 손님은 가끔 사장을 긴장시킨다. 매일 먹는 맛이 조금이라도 변한다면 가장 먼저 알아차릴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손님은 커피를 받아 들고 늘 하는 제스처가 있는데 한 모금 마신 후에 고개를 끄덕한다. 만족스럽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침마다 숙제 검사를 받는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어쩌다 한 번씩 그 손님이 오지 않으면 하루의 시작이 뭔가 아쉽다.
그 작은 확신들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이다.
오늘은 손님이 바깥을 바라보며 한 마디 덧붙인다.
“내일부터는 아이스로 마셔야겠네요.”
손님이 나가고 통창으로 아침볕이 성큼 들어선다.
이제 막 6월이건만 벌써부터 뜨거워질 기세다.
흘러나오던 음악은 어느새 랩소디인 블루로 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