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리실 역은 경원, 경원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오늘도 어제도 그제도 어김없이 이곳에 와있다.
나의 출근길.
등교하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나의 일터로 향한다.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한 지 이제 겨우 1년 하고도
3개월이 지났다. 1년 안에 폐업하는 카페가 80프로라나? 노래를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새 도착.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15분이 걸렸다. 카페에 들어온 순간부터는 영업시간 시작이다.
3개의 통창으로 이루어진 이 카페는 문을 열었는지 닫았는지 도통 알아보기가 쉽지 않아서 손님이
들어오면 영업 중인 거고 손님이 들어오지
않으면 영업하지 않는 곳이 된다. 불을 켜고
머신들을 가동한다. 영업을 준비하는 과정은 이제 아무런 생각 없이 절로 몸이 움직인다. 이건 영업을 마감할 때도 마찬가지다.
카페의 첫 번째 커피 맛은 언제나 그랬듯이 내가
맛본다. 아침의 커피 세팅은 디테일하게 확인하지 않는다. 내 입에 “괜찮네 “ 라든가 ”나쁘지 않네 “
정도이면 평소와 비슷한 컨디션으로 손님에게
커피를 내어줄 수 있다. 이곳은 아침 단골이 꽤 있다. 아이스 오트라테, 따뜻한 라테,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이스 디카페인. 종종 이 사이에 아이스 라테와
밀크티 손님도 들른다. 손님은 얼굴과 메뉴로 기억한다. 이름은 알 수가 없다. 이 공간에선 모두가 익명이다. 나 조차도. 그리고 그 안에는 다양한 색깔의
이야기들이 섞여있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모두 섞어보면 검은색이 아니라 커피색과 같지 않을까?
커피를 마시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이런 잡생각들을 참 많이도 한다. 어떻게 하면
매출을 더 올릴 수 있을지 생산적인 고민을
해야 하는데, 앗 손님이다.
“안녕하세요.”
“아이스 오트 라테 사이즈 업이요.”
“네, 감사합니다.”
우리 카페에서는 자그마한 키오스크를 사용하고
있어서 직접 주문을 받지 않고 손님이 주문과
결제를 직접 해결한다. 그래도 자주 오는 손님들은 내가 미리 커피를 준비할 수 있도록 얘기해 주곤
한다. 커피를 건네며 맛있게 드시라고 이야기한다. 늘 하는 말이지만 인사치레가 아니다.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도 내가 내린 커피 한 잔만큼은 맛있게
먹어주었으면 한다. 이 커피 한잔의 소중함을
알아버린 덕분에 내가 이곳에서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15년 전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밤새 잠이 오지 않았고 이른 새벽부터 토끼 눈으로 한강을 걷고 또 걸었다. 엉엉 울기도 했다. 제발 아무도 못 봤기를. 미친 여자처럼 보였겠지? 지금 생각해도 너무 부끄럽다. 그렇게 걷다 지쳐서 들어선 카페에서 따뜻한 라테 한 잔을 시켜 마셨다. 출근하는 직장인과 공부하는 고시생들로 가득한 카페는 바쁘고 생기 있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왜인지 기운을 얻어갔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힘든 일이 생기면 가까운 카페에 들러서 커피를 마셨다. 그렇게 마신 커피 잔들이 쌓여서 지금의 길로 이끌었던 걸까?
돌아와서 어쨌든 커피 맛에 있어서는 꽤 진지하게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장사에는 젬병인 듯 하지만. 나는 손님들에게 말을 잘 걸지 않는다. 스몰토크가 카페업계의 큰 화두로 떠오른 지 오래지만 먼저 말을 거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리고 내가 보기엔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꽤나 많다. 친해진 단골손님들은 모두 감사하게도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준 이들이었다.
나는 그저 이곳에서 기다렸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