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 아이스 디카페인 커피
디카페인 커피에는 논란이 많다. 나도 디카페인은 커피가 아니다라고 외치던 시절이 잠깐 있었다. 축복받은 체질 덕분에 나는 카페인에 큰 부담이 없고 커피 2잔 정도로는 수면에 큰 지장이 없다.
내가 디카페인을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의 8할은 솔직히 ‘귀찮음’ 때문이었다.
보통 카페에서 디카페인 옵션이 있다고 해도 전용 그라인더가 따로 있는 경우는 드물다.
일반 메뉴에 쓰는 원두는 보통 호퍼에 1kg 정도 담아두고 하루 종일 그걸로 내린다.
하지만 디카페인은 그렇지 않다.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한 잔 분량을 따로 무게 재고, 여분의 그라인더로 갈아내고, 다시 포터필터로 옮겨 담는다.
이 과정에서 커피가루는 꼭 흘리게 되고, 추출에도 저울을 쓰니까 손도 훨씬 많이 간다.
그러니 디카페인 주문이 들어오면 괜히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리 카페의 디카페인 원두는 내가 직접 로스팅한다.
생두를 고르고, 알맞은 열로 볶아내어 고소하면서도 쓰지 않고, 은은한 과일향이 남도록 만든다.
덕분에 요즘은 디카페인을 찾는 손님도 늘었고, 전용 단골도 생겼다.
그중엔 출근길마다 들르시는 중년 여성의 요양보호사님이 있다. 오래전엔 커피를 워낙 좋아해서 많이 마셨는데 어느 순간 저녁에 잠이 잘 오지 않아서 디카페인을 마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디카페인 커피 맛있는 데가 잘 없어서 아쉬웠는데, 여긴 맛있어서 자주 와야겠어요!”
그래서 이젠 출근길에 늘 들러서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들려주시곤 했다. 그러면서 몇 년 전까지 이 동네에서 20년 가까이 사셨고 자제분이 내 또래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이 동네의 풍경은 몇십 년째 변함이 없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달라졌다고 한다. 이젠 더 이상 누가 옆집에 사는지 알 수 없고 이곳에 터전을 잡아 활기차게 살아가던 이들은 지역이 각광받게 되면서 비싼 임대료를 받아 부유해졌지만 이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찾는 이 없이 적막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출근 시간이 다 됐다며 서둘러 일어나셨다. 손님이 맛있게 비운 커피잔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디카페인도 처음엔 똑같은 커피였는데, 가공을 거쳤다고 해서 더 이상 커피가 아닌 걸까?
누군가에겐 이 커피가 필요하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디카페인을 볶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