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무르익어가는 사람들

12시 30분 디카페인 바닐라 라테

by 신지원

단골손님이 생기면 카페 사장에게도 루틴이 생긴다. 굳이 시간을 확인하지 않고도 적당한 때에 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디카페인 원두가 담긴 병을 앞쪽으로 옮겨두고 라테 잔과 바닐라 시럽을 미리 꺼내둔다.

매주 목요일 12시 30분이 되면 꼭 오는 손님이 있다. 숏컷 머리에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분인데 근처 작은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직원이라고 하면서 직접 제작한 굿즈들을 선물로 준 적이 있었다. 커피잔 모양의 귀여운 손잡이가 달린 종이 책갈피였다.

이제 문이 열릴 것이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

“안녕하세요! 커피 바로 준비해 드릴게요!”

디카페인 원두를 덜어서 바로 갈아내고 미리 준비해 둔 컵에 바닐라 시럽을 붓는다.

“저번에 주신 책갈피 너무 잘 쓰고 있어요. 감사해요.”

“아, 커피 잔 모양으로 디자인한 거라 좋아하실 것 같더라고요.”

“맞아요. 너무 귀여워요.”

손님은 매장 책꽂이에 둔 책을 꺼내 펼쳐보며 이야기한다.

“올 때마다 항상 책을 읽고 계셔서 책갈피를 요긴하게 쓰실 것 같더라고요. 이 책은 재밌어요?”

“네 재밌게 읽었어요. 작가가 직접 겪은 이야기를 소설로 쓴 건데 공감도 많이 되고 캐릭터들이 리얼하더라고요. 원하시면 빌려드릴까요?”

커피를 건넨다.

“괜찮아요. 나중에 여유 있을 때 여기 와서 읽을게요. 여기선 책이 잘 읽힐 것 같아요.”

참 듣기 좋은 말이었다. 책이 잘 읽히는 장소라니, 그토록 내가 좋아하는 장소를 직접 운영하게 되었구나. 감회가 새로웠다.

“네, 그러세요. 책 잘 놔둘게요! 커피 맛있게 드세요.”

“잘 먹을게요!”

문을 열고 카페를 나서는 손님 뒤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카운터 아래 넣어둔 책을 다시 펼친다. 방금 뽑은 커피향기와 종이 냄새가 잠깐 섞인다. 페이지를 넘기며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책 읽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 온 것이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