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음악을 잘 모른다. 그래서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듣곤 한다. 요즘은 ‘인터라켄의 광활한 자연 속으로’라는 플레이리스트를 듣는다. 음악은 모르지만 취향은 있으므로 ‘가을 소풍 플레이리스트’, ‘여름밤 플레이리스트’ 등 시기와 분위기에 맞는 플레이리스트를 선택한다. 이렇게 철에 맞게 즐기는 것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게 바로 과일이다. 과일은 음악에 비하면 꽤 아는 편이다. 복숭아는 천중도, 포도는 머루 포도, 자두는 추희 자두처럼 선호하는 품종이 있는 정도이다.
복숭아 2/3를 썩혀 버린 적이 있다. 바빴던 신입 시절, 덜컥 복숭아 한 박스를 구입했다. 야근하고 10시 넘어서 집에 돌아오면, 복숭아를 먹기는커녕 쓰러져 잠들 시간 밖에 없었다. 게다가 복숭아를 실온에 그대로 두었다. 그렇게 복숭아를 둔 채로 잠만 자고 나가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곰팡이에 점령당한 복숭아를 발견했다. 썩어버린 복숭아 한 박스는 내겐 야근의 상징이다.
과일 중에서는 복숭아가 특히 보관이 까다롭다. 보관하려 하기보단 얼른 먹어야 한다. 오랜만에 본가에 간 적이 있다. 2주 전쯤, 엄마가 집에 정말 맛있는 복숭아가 있어서 맛 보여주고 싶다는 말을 했다. 본가에 가니, 엄마가 복숭아를 내왔다. 2주 전에 말했던 그 복숭아라고 했다. 달콤하고 향긋한 복숭아를 씹으며 생각했다. ‘복숭아가 2주나 가나?’
“엄마, 이거 왜 이렇게 싱싱해?”
“너 주려고 잘 보관해서 그렇지~”
복숭아를 하나하나 신문지로 싸서 복숭아가 포장되어 있던 스티로폼에 다시 넣은 후, 커다란 밀폐 용기에 조심스레 하나씩 담아 김치 냉장고에 넣어뒀다고 한다. 복숭아끼리 최대한 닿지 않도록 한 것이다. 냉장고가 시간이 멈추는 공간인 줄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여린 복숭아를 이렇게 오래 보존할 수 있는 줄은 몰랐다.
엄마의 사랑과 함께 약한 과일도 잘만 보관하면 꽤 오래 먹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로도 과일을 썩혀 버리기를 거듭한 끝에, 과일 보관에 관심을 갖게 됐다. 과일을 살 때마다 미션을 받는 기분이다. 이른바 ‘썩히지 않고 다 먹기 미션’, ‘음식물 쓰레기 최소화하기 미션’
썩히지 않고 먹으려면 적당량을 사야 하고, 부지런히 먹어야 한다. 자취를 해보니, 사과 하나 다 먹기도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과일을 씻고 다듬어 물기를 말린 후 밀폐 용기에 담아 두고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먹었다. 그럼 손쉽게 꺼내 먹을 수도 있고, 억지로 한 번에 다 먹지 않아도 된다. 미리 손질해 둔 게 있으면 ‘귀찮아서 안 먹어’하는 순간이 줄어든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려면, 샤인 머스켓, 방울토마토, 딸기 같이 꼭지만 따서 먹는 과일을 사거나 껍질까지 먹어 버리면 된다. 껍질을 일반 쓰레기에 버릴 수 있는 바나나, 귤 같은 과일을 먹는 것도 괜찮다. 이렇게 부지런한 노력 끝에, 집에 과일 안 떨어뜨리고 잘 먹을 수 있는 자취생이 되었다. 그냥 많이 먹는 걸 수도 있지만.
제철 과일을 먹으면 계절을 기다리게 된다. 과일엔 계절이 녹아 있다. 계절을 먹고, 계절을 듣고 있노라면 삶의 감각이 생생히 살아난다. 나는 자연 속에서 계절을 느끼는 일에서 큰 기쁨을 느낀다. 누군가는 책을 읽으며 마음의 양식을 쌓고, 누군가는 운동을 통해 잡념을 털어내듯, 내게는 계절을 누리는 일이 중요하다.
슬픈 일이 있었으나 할 수 있는 게 없던 어느 날 밤, 벤치에 누워 있었던 적이 있다. 고요 속에서 바람결에 부딪는 나뭇잎들의 소리만 들렸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는 시 구절이 떠올랐다. 이는 시인의 날 선 양심 고백이었겠지만, 나에게는 마음의 적막을 자각시키는 동시에 채워주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 마음을 맡겼다. 괴로움이 바람결에 조금은 흩어지는 듯했다.
이렇듯 계절을, 자연을 누리다 보면 감정의 밀도가 높아짐을 느낀다. 흘러가는 계절이 내 안에 무언가를 쌓고 가는 것만 같다. 그래서 더 반갑고, 붙잡고 싶어서인지 늘 제철 즐기기에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