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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승건의 서재 Dec 27. 2018

병원 가기 전에 생각할 것들

진료실에서 흔히 처방되는 약 가운데 ‘스타틴(statin)’ 계열의 약이 있다. 복용하고 있는 약 이름이 ‘-스타틴’으로 끝난다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상지혈증 혹은 고지혈증 치료제로 쓰이는 약인데, 흔히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약으로도 불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약을 먹으면 당연히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대부분 사람들이 모르는 놀라운 진실이 숨어있다. 연구들에 따르면 이 약은 고지혈증 환자 300명이 복용했을 때 그중에서 1명에게만 효과가 있다고 한다. 300명 중에서 겨우 1명에게만 효과가 있다는 사실도 의외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그 300명 가운데 15명에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한편, 전립선암을 수술로 치료할 때와 관련해서도 의외의 사실이 있다. 의사가 어떤 전립선암 환자를 수술한다고 해보자. 상식적으로 수술을 받으면 대부분 완치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의사가 49번의 전립선암 수술을 시행할 때 그 가운데 1번만 완전히 치료된다고 한다. 반면, 전립선암 수술을 받는 환자들 가운데서 발기부전이나 변실금 등의 부작용을 겪는 비율은 50%에 이른다.

요컨대, 우리가 당연하게 효과가 있다고 여기는 치료법들 가운데에는,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치료적 이득 못지않게 부작용과 같은 손해가 큰 것들도 적지 않다. 만약 인간이 완전히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존재라면, 이런 치료를 받기에 앞서 꼭 필요한지 꼼꼼하게 따져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의사가 어떤 치료법을 제안하면 치료 효과만 생각하지 그에 따르는 부작용까지 깊게 고려하지 않는다.

이것이 환자들의 잘못은 아니다. 원래 인간은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는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한다. 그리고 진료실에서 의사를 만나는 것은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스트레스 상황 가운데서도 그 정도가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안전장치를 준비해 둘 필요가 있다. 진료실에서 의사를 만나는 상황에서 잘못된 결정을 피하기 위해서 환자가 대비할 방법은 생각보다 특별하지 않다. 시간 순서대로 진료 전, 중, 후에 단 세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첫째, 의사를 만나러 가기 전에 자기 자신의 질병에 대해서 미리 알아보자. 요즘에는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에서 상당한 수준의 의학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관심을 두고 찾아본다면, 특정 질병에서는 평균적인 의사 이상의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정보들이 의사의 역할을 모두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환자 입장에 서 있는 당신이 더욱 자신감 있고 유리한 입장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둘째, 진료실에서는 의사에게 궁금한 것을 거리낌 없이 물어보자. 사실, 진료실은 환자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기에는 여러모로 어려운 장소이다. 궁금한 것이 다 기억나지 않을 뿐 아니라 무엇이 궁금한지 모를 수도 있다. 의사를 귀찮게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물어보고 싶은 것도 물어보지 못하고 나올 때도 많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의사는 당신을 돕기 위해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고, 당신은 건강상의 우려를 최대한 해소하기 위해서 그 맞은 편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남김없이 물어보고, 요구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당당하게 요구하라. 그게 당신이 귀한 시간을 들여서 의사를 찾아간 이유이니까.

셋째, 진료 후에는 의사의 말을 맹신하기보다 비판적인 관점으로 받아들이자. 의사도 당신과 같은 사람이다. 단지 당신보다 의학적 지식과 경험이 조금 더 많을 뿐이다. 의사와 당신의 차이는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이다. 의사도 모든 것을 알고 있지 않고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안타깝지만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당신의 몸의 주인은 당신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진료실을 나선 후에도 의사의 진단과 처치를 검증하고 또 검증하자.

요컨대, 진료실은 의사뿐 아니라 환자로서도 스트레스가 가득한 환경이다. 무언가를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판단하기에는 썩 좋지 않다. 그런 와중에 환자가 진료실에서 마주해야 하는 결정들은 대충 처리하기에 결코 가볍지 않다. 진료의 전 과정에서 환자 개개인의 주도적인 이해와 참여가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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