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낮에 20대 대통령 선거 재외국민투표소가 마련된 주영한국대사관을 찾아서 한 표를 행사하고 왔다. 주영한국대사관은 영국의 행정중심지인 웨스트민스터에 있는데, 영국 여왕의 주거지인 버킹엄 궁전과 걸어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이다.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에 위치한 주영한국대사관 전경. 고화질 사진)
구글 지도를 보며 따라가다가 목적지를 앞두고 마지막 코너를 돌아서니 태극기가 내걸린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7층짜리 갈색 건물로 크게 멋을 내지는 않았지만 단정한 느낌이 좋았다. 런던에는 수백 년 된 오래된 건물과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현대식 건물이 공존하는데, 주영한국대사관은 후자에 속했다.
건물 입구에 들어서니 대사관 직원들이 투표하러 왔는지 물어보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렇다고 답하니 보안 검색과 체온 측정을 한 뒤 투표장인 7층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라고 안내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서 내리니 바닥에 화살표가 왼쪽의 대사관 직원들로 향하고 있었다.
그분들 앞으로 가서 신분증을 건넨 뒤 신원 확인을 하고 디지털 패드에 전자펜으로 서명했다. 이어서 기표용지와 회송용 봉투를 받은 뒤 기표소로 향했다. 기표소에 들어가서 가림막이 잘 쳐졌는지 확인한 뒤 기표용지의 후보 중 정해둔 한 명의 이름 옆에 투표용 도장을 눌렀다. 그다음 기표용지를 반으로 접어서 회송용 봉투에 넣고 밀봉한 뒤 기표소 바로 앞에 보이는 투표함에 넣었다. 그 모든 과정을 투표함 뒤쪽에 앉아있는 투표참관인들이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투표용지를 회송용 봉투에 넣는다는 점 외에는 한국에 있을 때 투표하러 찾았던 주민센터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모습이었다. 런던에서 우리나라 주민센터 분위기를 경험하다니,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낯선 느낌이었다.
타고 왔던 엘리베이터에 다시 몸을 싣고 1층에서 내린 뒤 대사관 건물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대사관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고 싶어서 적당한 위치를 물색했다. 외국에서의 대통령 선거 참여가 특별하다면 특별한 경험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었나 보다. 이미 대사관 건물 앞에서는 투표를 마친 다른 우리나라 사람들 몇몇이 인증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도 그들처럼 대사관 명패를 뒤로 두고 셀카를 찍었다.
(주영한국대사관 앞에서 투표 후 찍은 셀카. 고화질 사진)
집에 들어오는 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유민주주의가 여러 불완전한 부분이 있음에도 현존하는 모든 정치체제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것으로 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거라는 절차 덕분이라는 것에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비록 그 결과가 항상 최선은 아닐지라도, 보통 사람들이 그들의 대표자를 결정할 권한을 쥐고 있다는 사실은 정치인들에게 중요한 동기부여가 된다. 그들이 유권자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에 따라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지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즉, 선거란 정치인들이 정신을 차릴 수 있게 해주는 각성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효과는 정치인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바로 우리, 유권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선거에서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표를 던지면서 그 표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때로는 당선된 이후에 기대와 다르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이들을 지켜보며 다음 선거에서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을 먹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 유권자들은 권력자들을 통제하는 힘이 바로 우리 손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선거가 정치인들뿐 아니라 우리 보통 사람들에게도 자신이 가진 힘의 실체를 직시케 하는 각성제인 이유다.
원문: 투표라는 이름의 각성제 - 신승건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