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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승건의 서재 May 04. 2022

네이버 뉴스에 '화나요'가 필요한 이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모습으로 유명한 페이스북의 ‘좋아요’는 2009년 2월에 처음 등장했다. 이후 페이스북은 ‘좋아요’ 버튼 덕분에 사용자 개개인의 호불호에 대한 막대한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었다. 페이스북은 이렇게 얻은 데이터를 토대로 아주 효율적인 개인 맞춤형 광고를 운영했고 세계적인 인터넷 기술 기업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페이스북의 ‘좋아요’에도 부족한 면이 드러났다. 세상의 모든 일이 항상 좋지만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예컨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마을 사진 아래에 ‘좋아요’ 버튼을 누를 수는 없는 일이다. 이에 인간이 느끼는 여러 감정에 맞는 다양한 버튼의 필요성이 대두했다.


결국 페이스북은 2016년부터 ‘좋아요’ 외에 다양한 감정을 표시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개편한다. 그래서 2022년 5월 현재 페이스북 사용자는 ‘좋아요’ 외에도 ‘최고예요’, ‘웃겨요’, ‘멋져요’, ‘슬퍼요’, ‘화나요’ 등의 여러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네이버 뉴스 아래에 감정 버튼이 나타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네이버는 2017년부터 뉴스 기사 하단에 ‘좋아요’, ‘훈훈해요’, ‘슬퍼요’, ‘화나요’, ‘후속기사 원해요’의 5가지 감정과 거기에 어울리는 표정 아이콘을 배치했다. 독자들은 기사를 읽고 이 버튼을 이용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페이스북과 네이버의 감정 버튼은 언뜻 보기엔 비슷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페이스북은 사용자 개개인이 남긴 ‘좋아요’의 이력에 따라 각자가 관심 있는 기사만 추려서 보여준다. 이런 것을 사용자가 알고리즘의 필터가 만들어낸 거품 속에 갇힌다는 의미로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네이버 뉴스에는 아직 그런 기능이 없다. 언론사 구독 기능이 있지만 페이스북의 자동화된 개인 추천 알고리즘에 비할 바는 아니다. 결과적으로 네이버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같은 기사에 노출된다.


여기서 하나의 역설이 드러난다. 네이버가 독자 개개인의 취향을 벗어난 다양한 기사도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는 평소에는 관심이 없을 주제의 기사와 그 아래 사람들의 감정 표현을 통해 타인의 생각을 접할 수 있다. 덕분에 소통이란 측면에서 한 단계 더 풍부한 경험을 누릴 수 있다.


예컨대, 나는 네이버 뉴스 하단의 표정 버튼을 직접 눌러본 적은 없지만 거기에 매겨진 숫자를 보면서 사람들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내가 어떤 기사를 읽으면서 긍정적인 내용이라고 생각했는데, 글 하단에 ‘화나요’가 압도적인 것을 발견하고 ‘어쩌면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소통이라는 플랫폼의 기능적 관점에서 보자면, ‘필터 버블’을 구축하는 페이스북의 감정 버튼보다 그런 기능이 없는 네이버 뉴스의 감정 버튼이 더 나은 수단일 수 있는 이유다.


그런데 네이버는 최근 자사 뉴스 서비스의 감정 버튼을 추천 버튼으로 개편했다. 지난 4월 28일부터 기존의 ‘좋아요’, ‘훈훈해요’, ‘슬퍼요’, ‘화나요’, ‘후속기사 원해요’ 버튼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감정이 배제된 ‘쏠쏠정보’, ‘흥미진진’, ‘공감백배’, ‘분석탁월’, ‘후속강추’라는 버튼이 자리잡았다.

나는 솔직히 ‘흥미진진’과 ‘후속강추’가 무슨 차이가 있으며 ‘쏠쏠정보’와 ‘분석탁월’이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다. 그저 영혼 없는 구색 갖추기 말장난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변화에 사람들도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네이버 측은 이번 개편에 대해서 공지를 통해 “사용자들이 기사를 보고 감정표현을 단순히 남기는 대신 꼭 기사를 추천하고 싶을 경우 자세한 추천 사유를 선택해 표기하는 형태로 새롭게 전환된다”며 “사용자들의 반응을 기반으로 언론사들이 공들여 작성한 좋은 기사들이 발굴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네이버는 사람들이 뉴스 기사를 읽는 이유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다. 독자들은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고 싶어서 기사를 읽는 것이지, 언론사의 노력을 생각하며 기사를 발굴하기 위해 기사를 읽는 게 아니다. 더구나 네이버는 독자의 감정 표현을 ‘단순한’ 행위로 격하하면서 ‘꼭 기사를 추천하고 싶을 경우’에 추천 사유를 남기라고 하고 있다. 정말로 오만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이 페이스북이나 네이버를 찾는 이유는 그곳에 소통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을 말하고 너의 생각을 구하는 게 소통이다. 만약 ‘너의 생각을 구하기는 구하는데 부정적인 것은 빼고’라고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소통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흔히 말하는 ‘답정너’다. 내 생각을 표현하지 못한다면, 남의 진짜 생각을 확인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그곳을 찾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내가 네이버 뉴스에서 감정 표시, 특히 ‘화나요’를 없애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가지 이유가 더 있다. ‘화나요’는 사실 ‘아파요’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세상의 병든 부분에 대해 마음 아파서 ‘화나요’를 누른다. 때로는 자신이 바로 그 아픈 사람이라서 살려달라는 울부짖음으로 ‘화나요’를 누르기도 한다. ‘화나요’가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없앤다면, 통증은 나쁜 것이니 환자더러 아프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아무쪼록 네이버가 다시 뉴스 하단에 화나요 표시를 되돌리기를 바란다. 그래서 비상식적인 사건들,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일들, 혹은 힘없는 사람들의 갑갑한 목소리를 전하는 기사에 사람들이 ‘화나요’를 누를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게 바로 플랫폼이 수행해야 할 역할이니까.


원문: https://shinseungkeon.com/%eb%84%a4%ec%9d%b4%eb%b2%84-%eb%89%b4%ec%8a%a4%ec%97%90-%ed%99%94%eb%82%98%ec%9a%94%ea%b0%80-%ed%95%84%ec%9a%94%ed%95%9c-%ec%9d%b4%ec%9c%a0/ | 신승건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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