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온 이후로 서평을 많이 못 쓰고 있다. 물론, 이건 내가 바라던 바가 전혀 아니다. 시간 여유가 많아지면 책도 더 많이 읽고 글도 열심히 써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사람 일이라는 게 종종 그렇듯 기대한 대로만 되는 게 아닌가 보다.
오히려 예전 인턴 레지던트 시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을 때 독서와 글쓰기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 당시에는 매주 책 한두 권씩 독파했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책이 주는 여운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노트북을 켜고 키보드에 손을 올리면 A4 기준으로 두세 페이지 정도 분량의 후기는 어렵지 않게 써 내려갈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엔 내가 그 당시와 같은 사람이라는 게 민망할 정도로 책 한 권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막상 독서 후기를 쓰려고 하면 내가 지금까지 읽은 내용이 무엇이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해진다. 처음 책을 폈던 시점으로부터 짧게는 두어 주, 길게는 한 달 넘게 걸리다 보니 흐름을 놓쳐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를 보완해볼 요량으로, 책 후기를 쓰기에 앞서 인터넷에서 같은 책을 다룬 글을 찾아본다. 독서 후기를 쓰기에 앞서 남들의 글을 먼저 읽는다? 글의 정확성을 도모한다는 핑계로 ‘내 나름의 생각을 정리한다’는 서평의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또 나름의 장점이 있다. 인터넷에서 잘 쓰인 서평을 발견하는 일이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글은 읽고 있는 것 자체로 독서 못지않은 즐거움을 준다. 세상에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어찌 이리도 많은지.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 정도 수준에는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에 남몰래 의기소침해질 때도 있다.
그러던 중,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문득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다른 블로거들의 서평 중에 괜찮은 것을 찾아서 허락을 얻은 뒤 내 블로그에 올리면 어떨까. 그렇게 해서 서평 플랫폼을 운영해 보면 어떨까.’
꽤 괜찮을 것 같았다. 비록 가져온 글들은 내 글들이 아니라는 점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나의 안목으로 다른 블로거들이 쓴 서평을 선별하여 한 곳에 모은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창의적인 작업이라고 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약간의 운영의 묘미가 필요할 터였다. 서평을 쓴 블로거들의 동의가 있어야 할 테니까. 이를 위한 몇 가지 유인책이 있어야 했다. 예컨대 내 블로그에 다른 블로거의 서평을 올린 다음 해당 블로그의 소개와 함께 원문으로 갈 수 있는 링크를 실어주는 방법이 떠올랐다. 어떻게든 굴러가게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은 있었다.
되든 안 되든 일단 행동으로 옮겼다. 서평 블로거들에게 보낼 초대의 글도 썼고, 블로그 설정도 여러 저자들의 이름으로 글을 작성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이제 초대장을 보내기만 하면 될 터였다.
(다음 글이 곧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