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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승건의 서재 Jun 23. 2022

창작자, 플랫폼, 콘텐츠, 그리고 이야기 [2/3]


한 달, 두 달, 석 달…하염없이 시간만 흘려보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는 서평 블로거들에게 초대장 보내길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 망설임의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플랫폼화를 망설인 이유, 그 첫 번째는 ‘인격성’이다. 만약 내가 서평 플랫폼을 만들어 여러 사람이 쓴 글들을 모으면 양질의 글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을 것이다. 서평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나름대로 유용하게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신 이 블로그의 글들은 나라는 인격체와는 점차 멀어질 것이다. 설령 그 글을 발굴하고 선별하여 배포하는 게 나일지라도, 직접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간 글이 나에 대해서 보여주는 것만큼 직접적이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내가 직접 쓴 글에서만 드러날 ‘인격성’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대체 불가능성’이다. 그런 블로그 혹은 매체는 누구나 만들 수 있다. 내가 아니라도 또 누군가는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것은 독자 입장에서 보면 있어도 여러 개의 선택 가능한 서평 사이트 중의 하나일 뿐이다. 나는 언제든지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플랫폼도 대세가 되면 대체 불가능에 가까운 상태에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 내용물이 남에게서 왔기 때문에, 그 대체 불가능성은 일시적이고 취약한 기반 위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더 훌륭한 플랫폼이 등장한다면 언제든 대세의 지위를 잃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창작자로서의 대체 불가능성은 그 본인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더욱 공고한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 물론 그만한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세 번째 이유는 ‘영속성’이다.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언젠가 사라진다. 그런 것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없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영속성을 기대할 수 없다. 설령 영속이라는 것이 인간의 삶 안에서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목표라고 하여도, 애초부터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안되는 걸 알아도, 그래도 시도는 해보고 싶다.


말하자면, 나는 나 자신을 표현할 무언가, 대체되지 않고, 오래도록 지속될 그런 것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결국 반년 넘게 고민만 거듭한 끝에 서평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뜻을 접었다. 대신 글을 쓰는 사람, 즉 ‘창작자’가 되는 데 전념하기로 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었다면 굳이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거듭되는 고민의 과정 끝에서 창작자, 플랫폼, 콘텐츠, 그리고 이야기를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가 생겼다.


(다음 글이 곧 이어집니다.)


원문: 창작자, 플랫폼, 콘텐츠, 그리고 이야기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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