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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승건의 서재 Nov 04. 2022

과학관의 탄생

토요일 오후, 집 근처 교보문고에서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특별히 찾는 책은 없었지만, 바로 그런 목적 없는 시간만이 줄 수 있는 나름의 행복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두어 시간쯤 되었을까. 식사 때가 되어 슬슬 돌아갈 준비를 했다. 읽던 책을 내려놓고 서점 출입구를 나섰다. 그때였다. 신간들이 누워있는 평서가에 이제껏 눈에 안 띄던 책이 하나 보였다. <과학관의 탄생>. 과학관이라… 과학관!


어릴 적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를 마치고 놀러 갔던 창경궁 옆 국립어린이과학관, 20대 후반 대학원생 시절 미국에 오가며 찾았던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 박물관과 뉴욕의 자연사박물관, 딸과 함께 소풍 삼아 찾아가던 부산의 부산국립과학관과 국립해양박물관, 체험 기구가 많아서 딸아이가 특히 좋아한 프랑크푸르트 과학박물관과 공룡 뼈로 유명한 젠켄베르크 자연사박물관,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런던에 살면서 수도 없이 찾던 런던 과학박물관과 자연사박물관까지. 나에게 과학관은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하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호기심이 일어 잠깐 걸음을 멈추고 책을 집어 들었다. 빠르게 목차를 훑어보니 런던 과학박물관과 자연사박물관이라는 소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자리에 선 채로 해당 페이지를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책에는 런던 과학박물관과 자연사박물관이 설립된 배경과 거기에 기여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었다. 소설 속에 익숙한 동네 이야기가 나올 때처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 겨우 서너 페이지쯤 읽었는데 아내가 그만 가자고 부른다. 나는 아내의 말을 잘 듣는 착한 남편이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책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도 책 제목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디서 주워들은 ‘책을 살까 말까 고민될 때는 그냥 사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그럴 걸 그랬다.


휴대폰을 열고 혹시 밀리의 서재에 이 책이 올라와 있지는 않은지 찾아보았다. 출간된 지 얼마 안 되어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였지만, 뭐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니까. 아직 없다면 온라인 서점에 주문할 생각이었다. 고맙게도 밀리의 서재에 <과학관의 탄생>이 올라와 있었고, 나는 곧바로 내려받아 첫 페이지부터 찬찬히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과학관의 탄생>의 저자 홍승길은 <과학동아>, <디지털타임스>를 비롯한 다수의 과학 매체에서 과학 기자로 활동했다. 오랜 시간 대중을 상대로 과학 관련 글을 써온, 이 분야에 잔뼈가 아주 굵은 작가다. 특히 이번 책에서는 사람들에게 자못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과학, 그리고 그보다도 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역사, 이 두 분야를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능수능란하게 다루었다.


책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과학관의 기원을 찾아 선사시대의 동굴 벽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시각 자료를 활용해 지식을 전수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과학관의 기원으로 본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 있었던 학술기관인 무세이온(Μουσείον)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무세이온은 박물관의 영어 명칭인 뮤지엄(Museum)의 어원이기도 하다. 그 유명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도 무세이온의 부속 기관이었다고 한다. 특히 그리스의 과학이 이슬람 문명에서 한 단계 도약한 뒤 다시 중세 유럽으로 역수입되는 과정이 인상 깊었다. 이슬람 문명의 과학 수준이 유럽을 압도하던 시기가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2부에서는 유럽 사회가 중세의 암흑기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던 시기를 살펴본다. 유럽인들이 배를 타고 대양으로 나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던 때로, 사회 각계각층에서 자연에 대한 탐구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이르러 과학관은 비로소 권력자들의 전유물을 벗어나 일반 대중을 위한 장소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3부는 18세기 말부터 19세기 말까지의 프랑스, 미국, 영국, 독일,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는 격동의 시기였다. 프랑스에는 프랑스혁명, 영국과 독일에는 산업혁명, 미국에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일본에는 메이지 유신이라는 큰 사건들이 있었다. 이 국가들의 지도자들은 대중에게 혁명과 개혁의 비전을 제시하고 홍보하는 수단으로써 과학관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활용하였다.


마지막 4부에서는 우리나라 과학관의 역사를 살펴본다. 그 시작은 일제시대 설립된 한반도 최초의 근대적 과학관이자 오늘날 국립중앙과학관의 전신인 은사기념과학관(恩賜記念科學館)으로, 은사에는 일본 왕실이 준 은사금으로 세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해방 후 우리나라 과학관은 북한이 일으킨 6.25 전쟁으로 사실상 소멸의 위기를 겪었지만, 이후 산업화를 거치며 재건되고 경제발전과 함께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는 전국 어디를 가든지 다채롭고 흥미로운 주제의 과학관들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과학관은 인류가 이룩해 온 문명에 대한 기념비이자, 미래 세대의 교육을 위해 잘 보전해야 할 소중한 지적 유산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우리 주변의 많은 것들이 실은 당연하지 않은 것이었음을, 앞서 살아간 누군가의 도전과 집념으로 창조된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공간이기도 하다.


선사시대의 동굴벽화부터 오늘날의 온갖 흥미로운 전시물로 가득한 국립과학관까지, 독자들도 <과학관의 탄생>을 읽으며 과학관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정을 즐겨보았으면 한다. 짐작건대, 이 책을 접하기 전과 후, 과학관에서 보내는 시간의 폭과 깊이가 크게 달라져 있으리라.


원글: 과학관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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