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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승건의 서재 Feb 08. 2023

사소한 것들의 과학

재료 과학의 사전적 의미는 재료의 화학적 혹은 물리적 속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나 같은 비전공자들에게 생소한 분야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였을까. <사소한 것들의 과학>을 읽기 전, 표지에서 전해지는 흥미로움 못지않게 부담감도 함께 다가왔다. 하지만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자 마지막 장을 닫을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다.


이 책의 저자 마크 미오도닉은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교수로 요즘 대중적으로 아주 잘나가는 과학자 중 하나라고 한다. 과학자도 연구실에 칩거하며 결과를 내는 경우가 있고, 저자처럼 사람들 속으로 뛰어들어 지식을 전파하는 유형도 있을 것이다. 서로 우열을 가릴 문제는 아니고, 각자가 택한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하고 본인도 그 길에서 만족감을 얻으면 그 자체로 좋은 일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작가로서의 재능도 유감없이 보여준다. 강철, 콘크리트, 플라스틱, 유리, 흑연, 생체재료처럼 누구나 재료 과학에서 다룰 만하다고 여기는 주제부터, 종이나 자기처럼 이게 재료 과학의 영역에 속할지 잠깐 멈추어 생각한 후에야 비로소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들도 다룬다. 그뿐만 아니라, 초콜릿, 거품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늘 접하는 것이지만, 재료 과학의 영역에 포함될 수 있겠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도 다룬다. 책을 읽다 보면 재료 과학이 다루는 영역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자못 궁금해진다.


이야기 전개 방식에도 저자의 기발함이 드러난다. 저자가 각각의 재료에 대해서 소개하고 설명하는 과정이 마치 추리소설 한 편처럼 흥미진진하다. 추리소설이라는 말이 단지 비유만은 아니다. 저자는 책의 시작에서 런던 시내의 한 건물 옥상에서 앉은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데, 이후 장마다 이 사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사진에서 저자가 읽고 있는 책의 재료인 종이, 손에 들고 있는 연필의 심을 만드는 데 쓰인 흑연, 앞에 놓인 찻잔을 만든 도기 같은 식이다. 사진 곳곳에 숨겨진 단서를 찾아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추리 소설의 전개 방식을 과학 교양서에 적용한 저자의 시도가 무척 신선했다.


그 사진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면, 배경에 런던을 대표하는 고층빌딩인 더 샤드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저자의 직장이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이라는 점, 옥상 위로 보이는 영국식 주택의 굴뚝의 모양새, 그 뒤로 보이는 더 샤드의 모습… 이런 단서로 미루어 보건대 저자가 이 사진을 찍은 장소는 내가 살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걸로 보인다. 아닌 게 아니라, 저자가 소장으로 있다는 공작 연구소를 구글 지도로 검색해보니, 내가 영국에서 심장 정기 진료를 받으러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병원으로 갈 때 지나던 길 바로 옆에 있었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저자는 기존 과학 교양서가 따르던 형식도 과감하게 탈피한다. 어떤 장에서는 여느 과학 교양서들처럼 지식을 쉽고 친절하게 설명하다가도, 또 다른 장에서는 희곡의 형식을 빌려서 재료의 특징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이제껏 그 어느 과학 교양서에서도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시도다.


저자는 자신의 본업인 재료 과학뿐 아니라 글쓰기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게 분명하다. 아니, 어쩌면 저자에게 있어 글이란 플라스틱이나 강철처럼 뭔가를 만들어내는 재료의 하나이고, 그는 그저 재료 과학자라는 본업에 충실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책 한 권 속에서 이렇게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을까 싶다. 그게 무엇이건 간에 저자는 그걸 즐기고 있었다.


<사소한 것들의 과학>은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재료들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다룬다. 저자가 풀어놓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장을 넘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일상에서 흔히 보던 재료들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데서 오는 지적 즐거움뿐 아니라, 저자의 기발한 전개와 참신한 구성을 따라가는 재미도 적잖다. 평소 재미있는 과학 교양서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원문: 사소한 것들의 과학 | 신승건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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