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적자 성장 VS 수익성 누구 말이 맞는가?

by 옆자리

7년 전 나는 어쩌다 휩쓸려 스타트업 대표가 됐었기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매 순간이 고통이었다.

회사의 방향성은 어떻게 결정해야 하지? 조직은 어떻게 운영해야 하지? 결정은 어떻게 해야 하지? 사람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수많은 고통을 겪으며 더 이상 아무 생각이 없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스타트업, VC, 경영에서 유명하다는 사람들의 글이나 책들을 많이 찾아봤었다.


그런데 동일한 주제에 대해 말이 너무 달랐다.

하나같이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사람들이 한 말인데.


가벼운 예시로 아래 4가지 카테고리를 들어보면 이렇다.



강력한 비전 / 빠른 피벗

일론 머스크와 손정의, "세상을 바꿀 비전, 인생을 걸만한 목표의 사업을 해야 한다"

VS

폴 그레이엄, Ycombinator "명확한 목표보다 빠른 피벗이 중요하다"


적자 성장 / 수익성

벤 호로위츠, 마크 안데르센 "초기 과감한 적자를 통해 미래에 훨씬 큰 J-Curve를 만들어야 한다"

VS

세콰이어캐피털, "수익성이 없는 모델은 비즈니스가 아니다"


제로투원 / 혁신 쌓기

피터 틸, "10배 이상 개선하거나 경쟁이 불가능한 수준의 제품을 만들어 독점해야 한다"

VS

스퀘어 "계속 조금씩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이 누적되면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자율중심 문화 / 강력한 규율

넷플릭스, 페이스북 "인재들의 능력 극대화를 위해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게 해야 한다"

VS

아마존, 애플 "팀이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선 전체를 관통하는 강력한 규율이 필요하다"



강력한 비전이 중요하다는데 빠르게 피버팅 하라는 건 뭔 소리야?

적자 보면서 과감하게 성장하라면서 수익성이 지키는 게 성립이 돼?

독점할만한 제품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데 점진적 개선이 의미가 있어?

자율적으로 일하게 해야 한다는데 강력한 규율을 또 어떻게 적용해?


그래서 내가 뭐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여기에 대해 지금 내가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내린 판단은 이렇다.

모두 다 맞는 말이다.

우리 회사가 어떤 상황인지에 따라 우선하는 내용들은 다를 수 있지만.

모두 동시에 맞는 말이다.


대충 설명해 보자면 이런 느낌일 것 같다.



1. 비전 VS 피버팅

- 우리 팀의 목표가 특정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면 강력한 비전을 고수하며 나아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

- 우리 팀의 출발이 문제 해결보다 시장의 성장이나 신기술 같은 미래 기회에 기반한다면, 실제 수요를 검증하기 위해 빠른 제품 개발과 피버팅이 더 중요하다


==> 강력한 비전을 고수하며 나아가는데 진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다른 방법이라는 판단이 든다면 과감하게 피버팅 해야 한다. 반대로 딱히 명확한 목표 의식 없는 팀이 피버팅을 통해 PMF검증이 끝나 제품과 사업 방향성이 확정되었다면. 이제는 강력한 비전을 정립해야 한다.


비전이란 우리 회사가 성공하기 위해 달성해야 하는 목표이며, 혼란을 야기하는 수많은 선택지들 중에서 올바른 답안을 찾게 해주는 등대이기에.



2. 빠른 성장 VS 수익성

- 시장 선점이 가장 중요한 승리요소라면 적자를 보면서라도 빠르게 성장하는 게 중요하다

- 하지만 시장 선점 이후 수익성이 확정된 것이 아니라면, 또한 선점을 위한 대규모 투자가 확보된 게 아니라면. 적어도 공헌이익이 흑자인 구조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수익과 투자 모두 없다면 생존조차 할 수 없기에


==> 스타트업 투자 활황기에는 대부분이 적자 성장 전략을 취했다. 그때는 그래도 괜찮았다. 계속 투자를 받을 수 있었으니까. 적자인 상태로 상장까지 가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시장 상황이 변했다. 작년부터 올해 위기를 겪는 스타트업들 대부분이 적자가 당연한 것처럼 운영을 했는데 투자를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된 경우들이다. 아직 너무 초기라 흑자를 도저히 기록할 수 없다면, 적어도 고객, 구매 단위 유닛 이코노믹스의 공헌이익이라도 흑자 구조를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성장성과 수익성이 확보되었다면. 과감하게 적자로 성장하는 베팅을 해볼 수 있다.



3. 혁신적 제품 VS 점진적 개선

- 항상 시장 독점을 노릴만한 혁신적 모델을 목표로 해야 한다

- 다만 현실에서 가장 집중해야 할 건, 고객들이 우리 제품을 사랑하도록 하나하나 노력하며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 제로투원. 독점이 가능한 제품을 만드는 건 모든 스타트업들의 목표여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케이스가 발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세계 최초의 제품이라 하더라도 곧 경쟁자가 생기며 생각지도 못했던 기존의 플레이어가 경쟁자가 되기도 한다. 물론 팔란티어처럼 쉽게 접근조차 못하는 특수 섹터도 있지만 이런 케이스는 매우 드물다. 내가 생각하는 제로투원의 현실 버전은 이 정도 해석일 것 같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제품을 만들어서 독점을 노려라. 그 정도는 노려야 겨우겨우 성공의 가능성이라도 희망할 수 있을 거다". 스타트업이 이미 경쟁이 존재하는 곳에서 경쟁자보다 압도적이지도 않으면 뭐 하러 그걸 해야 하나. 시장에 불필요한 플레이어가 추가되는 비효율이 추가되는 것뿐이지.


그리고 일단 독점을 꿈꿀 수 있는 제품과 BM이 만들어졌다면. 스타트업이 해야 할 건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모든 걸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항상 이게 가장 중요하다. 스타트업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건 투자자도, 고문도, 정치인도, 대표도, 임원도, 팀원도, 문화도 아닌. 고객이다. 우리에게 돈을 주는 고객. 이 세상에 투자 안 받고도 성공한 회사는 많지만, 고객 만족 못 시키고 성공한 회사는 없다. (솔직히 있긴 하지만. 적어도 스타트업이 꿈꿀 건 아닌 것 같다)


4. 자율중심 문화 VS 강력한 규율

- 스타트업의 업무는 절반 이상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기에 개인 한 명의 능력 극대화를 위한 자율성이 필수이다

- 하지만 그 자율성은 회사의 목표 달성을 위한 강력한 규율 안에서의 자율이어야 한다


==> 흔히 자율성 문화를 얘기하면 자율 출퇴근, 재택근무, 승인 없는 휴가 사용을 떠올린다. 그런데 이런 건 스타트업이 얘기하는 자율성이 아니다. 스타트업에서 얘기하는 자율성이란 초기 불명확하고 비효율이 많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해당 문제들을 한 명 한 명이 최대한 빠르고 많이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불필요한 의사소통이나 승인절차 등을 생략하고 주체적으로 움직인다는 개념이다. 철저히 회사의 효율적인 성장을 위한 방식이다. 그래서 자율성도 회사의 목표 달성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 강력한 규율 안에 존재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강력한 규율도 뭐 근태를 따지라거나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를 하라는 게 아니다. 스타트업이 얘기하는 강력한 규율은. 아마존의 "모든 업무는 고객에게 더 나은 만족을 제공하는가를 기준으로 평가한다"에 기반해 아무리 어려워도 고객 만족에 필요하다면 끝까지 수행하는 방식. 애플의 "고객이 인지하지도 못할 만큼 완벽한 일체감을 줘야 한다"에 기반해 제품 디자인과 생태계를 변태적으로 집착하며 구축하는 그런 것들이다.


사실 상당히 많은 스타트업들이 자율중심 문화를 내세우며 채용 공고에 재택근무, 자율출퇴근, 무한연차 같은 내용들을 강조하던 시절이 있었다. 실리콘밸리에서도 저렇게 한다면서 따라한 건데. 애초에 실리콘밸리에서 저런 문화들을 도입한 이유는 이렇다. MS, 야후 같은 메가컴퍼니들을 경쟁자로 두고. 돈도 없고 인력도 적은 회사가 싸워서 이기려면 모두가 칼을 갈며 주당 7~80시간씩 일해야 하니까. 자다가도 일어나서 일하고, 출근하다가도 식탁에 앉아 급한일을 처리해야 하니까. 예정된 휴가 사용 같은 건 존재할 수가 없는 일정이니까.


(우리 남들보다 덜 노력하고 가장 성공할 거예요 라는 게 말이 되나...? 대기업보다 더 큰 성장과 성공의 기회를 노리겠다며 스타트업에 조인하면서 저런 얘기하는 팀에 들어가도 되나...?)


뭐 여기까지 돌이켜보니.

내가 이 단어들이 지칭하는 뜻을 너무 몰랐기 때문에 발생한. 무지에 기반한 오류였던 것 같다.


전 세계에서 유명하신 분들이니만큼.

하나하나 주옥같은 말들이었는데도 말이지...

잠시나마 불경한 생각들을 했음에 다시 한번 반성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스타트업, 망한 순간에서 했던 생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