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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엄마라도 엄마입니다.

이른둥이의 인큐베이터 집중치료실 입원일기

2화 이른둥이의 인큐베이터 집중치료실 입원일기


도저히 버틸수 없어서 35주를 간신히 채우고 재왕절개 수술로 셋째를 만났다. 82년생 엄마는 그렇게 늦둥이 엄마가 되었다. 두아이를 출산하고 둘째 또한 이른둥이로 응급으로 수술 후 인큐베이터에 14일을 입원했었다.

셋째는 내가 너무 힘들어서 어쩔수 없는 선택이어서 죄책감이 컸다. 둘째를 낳을때도 죄책감이 컸지만 셋째는 더 큰 미안함으로 마음이 아려왔다.


둘째는 응급으로 진통이 안잡혀서 일찍 나와 자가호흡이 안되고 인큐베이터에 들어갔었다. 밤에 심정지로 심장주사를 두번을 맞고 자가호흡이 잘되서 다행히 별다른 이상없이 2주 입원 후 집으로 올수 있었다. 하지만 셋째는 아이가 늦게 나오면서 산소부족으로 뇌에 이상이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고 인큐베이터 저온치료(?)를 하며 지켜봐야 한다고 하셨다.


저온치료는 36시간을 지켜보고 관찰해야 하는 치료이고 이상이 있다면 아이가 발작을 일으킨다고 했다. 그 하루하루가 얼마나 피가 마른지 집중치료실에 아이를 보낸 부모들은 알것이다.  신랑과 나는 하루하루 애가타고 너무 피가 마르는 시간이었다. 신랑은 일을 쉴수 없어 수술하고 혼자 아픔과 슬픔을 견뎌야하는 상황이 너무 힘들었지만 엄마는 강해야 했고 상황이 강할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3번의 재황절개는 2번째와는 비교가 안되게 너무 아팠고 힘들었다. 첫째는 수술한 날 밤에 직접 모유수유를 했다. 둘째 또한 인큐에 있어도 분유 한방울도 안먹이고 다음날 바로 모유를 짜서 집중치료실에 직접 가져다준 나다. 나이가 있어서 회복도 더딘건지 아니면 3번째라 더 아픈건지 몸은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두아이 모두 둘쨋날 걸어다녔는데 이번에는 한걸음 한걸음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는지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몸이 아파도 아이를 생각하면 내 몸아픈것만 생각할 수 없었다. 집중치료실 면회는 둘째때는 매일 면회가 되었는데 이젠 정해진 날짜 일주일에 두번밖에 면회가 안되었다. 신랑은 아이를 출산 한날 바로 보고 나는 간호사님께서 찍어준 사진말고는 직접 보지 못했다. 아이가 너무 늦게나와 산소공급도 안되고 자가호흡이 약해서 아이얼굴도 보지 못하고 회복실에 있다가 바로 병실에 올라와 아이가 너무 보고 싶었다.


몇일만에 우리 이쁜 늦둥이 실물영접~!! 두딸 모두 어릴땐 아빠 판박이 이번에도 아빠얼굴이었다. 딸만 둘을 낳은 나에게는 아들얼굴이 왜 이리 어색하기도 했다. 신생아가 너무 오랜만이라 아이가 너무도 작게 보이고 가냘파 보이니 맘이 더 애리고 아파왔다. 신랑은 우리 둘째보다 크다고 했지만 나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다행히 저온치료가 끝나고 상태는 나쁘지 않고 뇌초음파는 이상이 없다고 하셨다.


아이는 집중치료실에 남겨두고 나는 먼저 퇴원을 했다. 두아이 모두 산후조리원에 가질 못해서 이번에는 늦은 나이라 꼭 산후조리원에 가서 편히 쉬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가 병원에 있는데 혼자 조리원에 들어가는 것은 사치같았고 미안했다.  다시 시간을 돌린다면 나같은 산모분들이 있다면 나는 꼭 죄책감을 갖지말고 스스로를 돌보고 챙기는건 사치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건강하고 회복을 해야 아이를 볼수 있기 때문에 꼭 나를 돌보고 챙겨야 하는 일은 당연한것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산넘어 산이라고 이젠 뇌는 문제가 없는데 심장쪽에 아직 미숙한 부분이 많아서 심장은 퇴원전에 초음파와 엠알아이를 찍고 검사결과를 보고 퇴원여부를 알수 있다고 했다. 둘째는 별탈없이 잘 지나갔지만 셋째는 자꾸 머하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퇴원전날 심장초음파 소젼상 혈관이 안막힌 부분이 있고 출혈이 있는 부분등 걔속 추척관찰을 해야한다고 하셨다.


퇴원 후에 두아이를 케어하기 힘드니 시댁에서 몸조리를 했다. 결혼 후 시부모님과 함께 몇년을 살아서 친정부모님처럼 편한 사이지만 혼자와서 조리를 하니 눈치 아닌 눈치가 보이긴 했다. 하지만 나이가 있고 몸이 힘드니 나는 그냥 눈감고 시어머님이 해주시는 밥상을 잘먹고 내 몸챙겨야했다. 만삭때 토하고 고생해서 입맛이 돌아오지 않았지만 회복을 해야했기에 억지로 참고 먹었다. 내아이들을 위해 아니 나를 위해서 먹어야 했다.


면회날짜만 기다리며 아이를 보고 오면 마음이 더 아프고 힘들었다. 너무 토하고 살이 빠져서 모유는 단 한방울도 나오지 않았고 맛사지를 받았지만 받을때도 거의 나오질 않았다. 맛사지를 해주시는 이모님께서 아무래도 젖이 안나올것 같으니 그냥 분유 먹이세요 라고 하셨다. 진짜 일주일이 지나도 젖몸살은 커녕 모유가 도는 느낌조차 나지 않았다.


집중치료실 퇴원전에 아이 모유먹이기를 교육하고 퇴원을 하는데 모유가 안나오니 분유먹이기 연습을 하고 퇴원을 해 집으로 왔다. 두아이 모두 완모를 했기에 모유가 안나올꺼라고는 상상조차 해본적이 없는데 어쩔수없이 완분을 해야만했다. 만삭때 간수치때문에 다시 검사를 받으로 갔을때 의사선생님께서 너무 죄책감 갖지마세요~ 저도 완분인데 이렇게 잘 컷으니 건강하게 잘 클꺼예요라는 위로의 말을 건내셨다.


말 한마디가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사람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를 죽이기도 살리기도 할수 있다는 것을 직접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후로 모유는 커녕 초유도 나오질 않아 먹이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내려놓기로했다. 감정에 휩싸여 힘들면 감정이 우리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지기에 멘탈을 잡아야 했다. 내 힘으로는 얼쩔수 없으니 마음을 비우기로 하고 완분을 했다.


산넘어 산이라고 그것으로 끝난것이 아니었다. 퇴원하기 전날 아이 피검사에 갑상선 수치가 너무 높게 나와서 갑상선 약을 먹였다고 하셨다. 신생아 갑상선은 듣도 못한 이야기였고 머릿속이 하해졌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 이리저리 알아본 결과 몇년간은 약을 먹어야하고 몇년 동안 약을 먹고 괜찮으면 약을 안먹어도 되지만 경과가 나쁘편 평생 먹어야 하는 병이다. 뱃속에서 엄마의 영양분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생길 수 있는 병이라고 했다.


늦은 애미의 욕심이었을까? 내 욕심으로 아이를 선택했고 아이가 나를 선택해서 찾아와준것은 너무나도 가사한 일이지만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신생아부터 몇년간 어린 아기에게 약을 먹어야 하다니 이게 무슨일인지 그때의 그 심정은 글로 다 표현할수가 없다. 지금도 매일 약을 챙겨먹고 이젠 익숙해져서 약을 잘 먹는다. 다행이 지금은 수치가 너무 좋아졌고 아이 몸무게가 늘면 약 양도 늘리는데 양을 늘리지 않아도 수치가 좋아 애후가 좋아 참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모유를 먹이지 못했었도 아프게 낳아서 미안한 엄마지만 이세상 누구보다 이쁜 내아가 늙은 엄마를 선택해 찾아와준 고마운 우리 셋째에게 오늘도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며,,,

오늘도 내몸과 온 마음을 다해 육아에 힘쓰고 애쓰며 고단한 몸에 지친 그대에게 위로가 되길 바래봅니다.


                      


                                                           육아디자이너 트윙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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