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에는 결혼을 하면 당연히 임신을 하고 건강한 아이를 만날수 있다고 쉽게 생각했던 사람중에 하나였다. 그때는 무슨 자신감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참 쉽고 간편하게 자판기 커피같은 잘못된 생각을 했던것 같다. 임신만큼 어려운것도 없고 건강한 아이를 만나는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한 일인지 모르며 자신감 넘치게 엄마가 쉽게되는 줄 알았던 무식한 적이 있었다.
감사하게도 결혼도 아이도 모두 바라던데로 생겼지만
임신과 동시에 너무 많은 고생도 하고 엄마라는 이름표가 제일 어려운 직업이라는것을 그땐 몰랐다. 부족하지만 어찌됐든 두아이에 엄마가된건 참 감사하고 또 감사한일이다. 이쁜 두딸에 엄마라는것도 참 감사하다.
엄마가 되고싶은 나에게 엄마를 만들어준 예쁜 아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해보았다.
임신과 동시에 엄마가 되기위한 준비의 시간 열달을 시간이 찾아왔다.
임신을 하지 않았다면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켤코 느낄 수 없는 임산부들이 두려워하는 입덧... 큰아이 임신하고 막달때까지 입덧뿐 아니라 소양증으로도 너무 고생했었다. 임신 소양증은 임산부들의 흔한 증상이 아니기에 임신소양증이라는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수 없는 증상중에 하나다.
임신 소양증은 가려움증 알레르기 증상처럼 가려움으로 엄청 고생하는 증상이다. 임신 소양증은 말그대로 임신으로 인해 생기는 증상이기에 아이를 낳으면 바로 피부가 전혀 가렵지도 않고 아무런 증상도 없이 깨끗해진다. 열달의 힘든시간을 보내고 첫아이와의 만남으로 진짜 엄마가 되었다.
아기를 낳고 키울때 키우는게 좋을것 같아서 2살터울 동생을 만들어주자고 계획을 했다. 둘째 또한 계획한데로 바로 찾아와주었다. 엄마되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임신과 동시에 둘째도 입덧이 시작되었다. 고생할것을 예상했지만 웬걸 큰 아이때보다 더 입덧이 심해서 변기를 붙잡고 매일 울었던 기억이 난다.
신랑을 원망할수 없었던 이유는 둘째를 갖자고 계획한것도 나였기에 힘들어도 엄마가 되기위한 시간을 현명하게 잘 견뎌내야만 했다. 둘째계획은 내가 원한거라 장난기 많은 신랑은 웃으며 쳐다보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결혼을 하면서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라 신랑은 큰아이만 낳고 아이계획을 마감하길 원했다.
상황이 된다면 형제&자매는 부모가 아이에게 줄수 있는 있는 가장 큰 유산이자 선물이라고 생각기에 서로 의지할수 있는 동생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지금도 그 선택과 생각은 내가 인생에서 제일 잘한일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큰아이에게 동생을 만들어주고 싶던 엄마의 마음데로 둘째는 쉽게 찾아와 준것에 대한 감사함을 그때는 몰랐던것 같다.
그때 나는 신랑에게 "다신 애기 안가질꺼야" 하면서 자주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감사할줄을 몰랐던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둘째에게 미안하다. 나쁜 마음때문이었을까? 큰아이때처럼 10달을 다 채우고 나올줄 알았던 아이가 한달반을 먼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입덧하며 힘들어했던것이 죄책감처럼 밀려왔었다. 내가 원망했던 마음때문에 아이가 일찍 나온것 같아서 가슴 한켠이 아리고 아팠다.
둘째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양수과다증으로 조산을했다. 큰아이때처럼 10달을 다 채우고 나올줄 알았던 아이가 한달반을 먼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입덧하며 힘들어했던것이 죄책감처럼 밀려왔었다. 내가 원망했던 마음때문에 아이가 일찍 나온것 같아서 가슴 한켠이 아리고 아팠다.
여전히 생생한 둘째를 만나기 하루전 응급수술 전날 3월 16일 저녁에 외식을 하고 집에 가는길 배가 사르르 아픈것이 직감적으로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아직 예정일이 많이 남았는데 진통이 시작되는것 같은 불길한 예감... 대학병원으로 신랑과 저녁에 병원에 대학병원에 갔다. 검사결과 벌써 진통의 가격이 시작되었다고 잘못들은건가 머리속이 하해졌다.
간호사 선생님의말씀....
"아직 아이가 예정일이 많이 남아서 수술이 위험할수 있기에 내일 아침에 제일 오래된 담당교수님이 수술을 해주실꺼예요"라고 했다. 응굽실에서 대기실로 이동을 하고 아침까지 진통을 느끼며 뜬듯으로 밤을 지새웠다. 지금 생각하면 그날은 아직도 기억하기도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이다.
아침 새벽 아이 수술전에 마지막 초음파 확인을 위해 초음파실로 이동을 했다. 의사선생님 말씀으로는 동네 병원에 검진을 다닐때 양수가 많다고 했었는데 문제가 될정도인지는 몰랐다.
대학병원 의사선생님 말씀
"양수가 이렇게 많은데 큰 병원 가란 소리 안했나요" 하시며
아침에 수술전에 마지막 초음파를 보시고 확인을 하시며 의사선생님께서 말씀을 해주셨다.
동네 병원에 검진을 다닐때 양수가 많다고는 하셨지만 문제될 정도는 아니라고 하셨는데 이거 무슨일인지 머리속이 더 하해지고 정신이 없었다.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든 시간이었던 것 같다. 조산으로 인한 아이의 건강도 걱정되고 엄마될 자격이 부족했을까하는 죄책감이 계속 나를 힘들게 했다.
오후가 되기전 나이가 많으신 담당교수님에서 응급으로 수술을 해주시고 수술을 잘 마치고 회복실을 거쳐 입원실로 올라갔다. 둘째는 자가호흡이 안되서(심장주사 투여 1회는 나라에서 지급해줌) 급하게 응급으로 인큐에 입원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다 끔찍하고 무섭고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 둘째는 아빠 생일날 일찍 찾아와 아빠에게 잊을 수 없는 생일 선물이 되었고 나에게는 엄마가 된다는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를 다시한번 느끼게 해주었다.
조산을 했기에 의사선생님 말씀으로는 "아이가 어디가 아플수도 변수가 많이 생길수 있고 마음의 준비는 조금 하셔야해요" 부모에게 최악의 상황까지 얘기해주신다.
아이가 잘못될수도 있다는 최악의 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준비를 해야하는 마음은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알수가 없다. 출산 후 입원실에 돌아와 그런 말을 듣고 출산 후 지옥같은 시간을 보내며 종일 울었다. 재왕절개를 해서 몸을 챙겨야 했지만 몸을 챙길 여유도 마음도 전혀 없었다. 몸이 아픈건 전혀 느끼지 못할만큼 너무 힘든 시간이었던 것같다.
생각해보면 신랑도 많이 힘들텐데 나를 다독이며 "어찌되었든 우리의 몫이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자. 아이가 아프든 건강하든 그건 우리가 안아야 할 몫이라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 자책하지 말자"며 많은 위로를 해주었다. 그 일로 신랑이 큰 잘못을 해도 미워하지 않았던 큰 이유이기도 하다. 그때 정말 너무 큰 힘이되어준건 신랑이 었기에 앞으로도 신랑이 해준 위로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것같다.
그날은 신랑의 따뜻한 위로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다. 걱정하며 울고 있는 출산한 그날 밤 아기가 갑작히 밤에 호흡이 멈춰서 2번째 심장주사(2회는 자비로 내야한다)를 맞고 다시 호흡이 돌아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 정말 하늘이 무너진다는 기분이 이런거라는것을 처음 느껴봤다. 아이는 다행히 주사를 한번 더 맞고 호흡이 돌아왔고 다행히도 인큐베이터에서 아이는 잘 지내주었다.
나는 재왕절개를 했기에 일주일 입원 후 집으로 퇴원하고 아이는 일주일정도 더 있다 태어난지 14일 후 집으로 돌아왔다. 인큐는 하루에 한번 면회가 되기에 매일 면회를 가고 모유를 짜서 갔다주어서 인큐에서도 모유를 잘 먹어서 지금도 아이는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다. 몸조리를 못한게 지금도 조금의 휴유증은 있지만 아이가 건강하다는것은 더 큰 보상을 받았기에 아주 만족하고 감사하다.
어쨋든 힘들게 둘째를 출산하고 지금은 두아이 모두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다. 몸고생 마음고생도 많았지만 켤고 엄마가 된다는것을 후회한적은 없었지만 단 하나 더 이상 아이를 원치 않았다. 내 그릇이 세명을 키울 수 있는 그릇이 아니기를 인정했기에 우리 부부는 둘째를 끝으로 아이 계획을 마무리 했다.
사람이 모든 쉽게 얻으면 감사함을 모르듯 엄마는 켤코 쉽게 되는것이 아니라는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을까? 임신과 출산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나에게 엄마가 되는것이 얼마나 어려운일인지 일을 하나씩 겪어야만 했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엄마라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 다듬고 다듬어지며 아이들을 만났다.
임신은 생각한데로 쉽게 되었지만 엄마가 되기위한 열달의 시간을 아이들을 만나기까지는 많은 고생을 하며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야했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엄마라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 다듬고 다듬어지며 아이들을 만났다. 나는 그 누구보다 감사하고 행복하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엄마라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 다듬고 다듬어지며 아이들을 만났다.
두명의 딸을 키우는 엄마지만 나는 전혀 여성스럽지도 애교 1도 없는 나는 아주 털털한 사람이다. 꼼꼼하지도 조심스럽지도 않은 말그대로 남자같은 스타일이다. 아이를 키울때도 여성스럽게 아이들을 부드럽게 대하거나 부드럽게 다룰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 나란 여자에게 태어난 이쁜 두딸은 애교도 많고 여성스러운 말투와 애교스러운 행동등은 전혀 나를 닮지 않았다. 신랑 또한 애교가 있거나 부드러운스타일의 남자도 아니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 나에게는 여성스럽고 애교있는 딸 둘이 있다. 지금은 엄마손이 많이 필요없는 초등학생들이다.
현재 두아이는 매일 파이팅 넘치게 싸우며 작은 전쟁도 치르고 때론 서로 없어서는 안되는 단짝처럼 잘 니재고 있다. 서로 의지하며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며 역시나 어쨋든 힘들게 두아이를 만나는 힘든 시간을 보상받았다. 지금은 두아이 모두 마음도 몸도 모두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어 더 없이 감사하고 또 감사할뿐이다.
다음편에 계속.......
엄마도 자격이 필요했다 2편 보기: https://brunch.co.kr/@shinshins77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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