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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사용설명서
18화
감사해야 할 두 가지
by
신수현
Sep 3. 2025
아버지는 놀음에 단호하다.
어릴 적 아버지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놀음은 절대 시작하지 마라. 한 번 빠지면 오른팔을 잃어도 왼팔로 계속하는 게 놀음이다.”
그때는 그 말의 무게를 몰랐지만, 세상을 살아가며 그 깊은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코인이나 게임에 빠져 살지 않았지만, 게임을 하고 하트가 충전되기 기다리지 못해 2000원 되는 소액결제를 하다 보니 며칠 만에 20만 원의 핸드폰결제가 되어버린 적이 있다.
중독은 게으른 사람이 빠지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빠지는 것 같다.
놀음에 빠진 이들은 대개 현재 삶에 불만족하고, 쉽게 돈을 벌고자 하며 결국 중독의 늪에 빠져 허우적댑니다.
순간의 쾌락에 눈이 멀어 가정을 무너뜨리는 경우도 많죠.
제 주변에도 카드빚과 도박 빚으로 가족을 힘들게 한 이들을 보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아버지께서 놀음에 빠지지 않으신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느낍니다.
비록 넉넉하지 않았지만, 땀 흘려 번 돈으로 가정을 지키셨기에 저희 형제는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이 단순한 충고가 아닌, 삶으로 증명된 다짐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바람... 외도는 사절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가 술자리 후 다투시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아버지가 다른 여자를 만나셨다면 갈등이 덜했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경험하며 깨달았습니다.
만약 아버지께서 외도를 택하셨다면, 단순한 부부싸움이 아닌 가정의 붕괴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생활비가 끊기고, 재산이 탕진되며 가족이 방치되는 현실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 상황이었다면 어머니뿐 아니라 저와 형제들도 고통 속에 살았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가정의 울타리를 지켜주셨습니다.
외도를 하지 않으셨기에 우리 가족은 함께 모여 희망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깨닫지 못했던 감사의 마음
사람은 가까이 있을 때 그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마치 거울에 얼굴을 너무 가까이 대면 전체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요.
어릴 적엔 서운함과 불평만 가득했지만, 나이를 먹고 한 걸음 물러서 보니 감사할 일이 훨씬 많았습니다.
주변에는 부모의 빚을 대신 갚거나, 가정을 떠난 부모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과 비교하면 제 삶은 감사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불만만 품고 아버지의 고마움을 몰랐습니다.
이제야 깨닫습니다. 아버지께서 도박과 외도를 하지 않으셨기에 제 인생이 지탱될 수 있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당연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지키기 어려운 큰 선택이었습니다.
늦었지만 전하는 감사의 마음
이제는 아버지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완벽하지는 않으셨지만, 최소한의 울타리를 지켜주셨기에 제가 사람답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께 불평하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감사의 마음을 기록하는 것 자체가 저에게 큰 배움입니다.
앞으로는 거울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 불만만 보는 대신, 한 걸음 물러서서 전체를 바라보는 지혜를 잊지 않으려 합니다.
아버지께 감사한 두 가지, 놀음에 빠지지 않으셨고 외도하지 않으셨다는 점. 이 두 가지는 단순히 ‘하지 않은 것’ 같지만, 우리 가족의 삶을 지켜낸 위대한 선택이었습니다.
뒤늦게라도 그 고마움을 깨닫게 되어 참 다행입니다.
이 글을 통해 아버지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독자 여러분도 잠시 시간을 내어 부모님께 감사할 일을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가까이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소중함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설 때 더욱 선명히 다가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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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해야 할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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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배의 힘이 드는 걸까? 힘이 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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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기다리며 글을 씁니다. 멈춘듯, 흐르지 않는 어둠과 함께 ... 시간에 대한 후회, 반복되는 상처로 인해 글은 저의 치료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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