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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십 년을 덤으로 사셨소"

십 년의 선물, 아버지의 기적 같은 시간

by 신수현

아버지께서 뇌출혈로 쓰러지신 건, 내가 고등학교 졸업을 코앞에 둔 어느 날이었다.

나는 이미 사회에 발을 들여놓은 상태였고, 고모의 전화 소식은 믿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우리 가족에게 이렇게 가까운 죽음이 찾아온 건 처음이었다.

병원에서는 희망이 없다고 했다.

수술을 해도 살아날 확률이 거의 없으니, 괜히 돈만 낭비하지 말고 집으로 모시라는 말까지 들었다.

엄마는 차라리 수술 중에 돌아가셔도 좋으니 꼭 수술을 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하지만 의사는 경제적인 이유로 수술을 하지 않는 게 낫다고 냉정하게 말했다.

엄마는 그 말에 마음이 무너졌다.

시골에서 올라온 우리를 보고, 돈 없는 사람이라 판단해 함부로 말하는 것 같다고 서운해하셨다.

끝까지 수술을 부탁하며, 어떻게든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기적처럼 수술은 성공했다.

수술 후 아버지는 누군가의 부축을 받아야 하지만, 누워만 있던 환자들과 달리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우리를 위해 다시 일어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의사는 진짜 의사라기보단 돌팔이였던 것 같다.

십 년이 흐른 뒤, 아버지는 다시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게 되었다.

그 진료를 맡은 이는 다름 아닌, 십 년 전 수술을 담당했던 바로 그 의사였다.

그는 여전히 병원에 있었고, 아버지도 여전히 살아계셨다.


“선생님, 저 기억하시죠? 십 년 전에 수술받았어요.”

“당신은 십 년을 덤으로 사셨소.”


아버지의 십 년은, 어쩌면 자신보다 우리 가족을 위해 버텨낸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시기는 내가 사회생활을 막 시작할 때였고, 대학은 꿈도 못 꾸던 시기였으며, 동생은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때였다.

그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면,

엄마는 일곱 형제와 그 가족들 앞에서 얼마나 외롭고 상처 많은 시간을 견뎌야 했을까?


만약 그 시기에 돌아가셨다면, 물려주신 재산은 오빠에게 돌아가 집에 남은 것들까지 모두 팔아버렸을지도 모른다. 몇 년 안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것일 뿐이다.

의미 없는 일상이 되고, 어둠 속 긴 터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시간은 영원할 것만 같은 찬란한 순간으로 빛나기도 한다.

그 찬란함도 결국 끝이 있다.


인생은 짧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도 짧다.

우리가 길게 느끼는 그 시간은, 어쩌면 써보지도 못하고 끝나버릴 미래일 수도 있다.

나도 그랬다.

하루가 길고, 한 달이 고통스럽고, 1년이 무의미하며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시간들. 하지만 뒤돌아보면, 그 시간들은 내 젊음이었고, 내 상처로 뒤덮인 날들이었으며, 결국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총알 같은 시간들이었다.

돌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이제는 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사랑으로 채워질 시간들이라는 것을.

지금까지 어둠과 후회로 얼룩진 시간들이었어도, 남은 시간은 새롭게 시작될 수 있다.


미워하지 말자.

지나간 어둠을 되새기기보다는, 내 앞에 비치는 작은 빛 하나라도 붙잡아 그 어둠을 닦아내는 데 쓰자.


아버지는 그 덤으로 얻은 십 년을 감사하며 살았을 것이다.

가족과 멀어질 수도 있었던 그 시간들을 더 가까이 함께하려 노력하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 자리를 지켰다. 병마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지켜냈다.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날 불러주셨다.


“지금쯤... 돌아와 주면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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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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