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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나... 둘만의 여행은 분명히 있었다.

'내가 없더라도 나의 딸을 기억해 주세요'라는 무언의 부탁

by 신수현

아버지와 나, 둘만의 여행은 분명히 있었다.

오빠가 분가하고, 텅 빈듯한 큰집에는 부모님과 나, 이렇게 소박하게 지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는 회사에 다니지 않고 한가롭게 지내고 있었고, 어릴 적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올 때마다 큰소리를 듣곤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모님은 나이가 들고 힘이 빠지셨다. 그러면서 자식들에게 소리 지르는 일도 줄어들었다.

어느 날 아침, 아버지가 내 차를 타고 친척을 보러 가자고 하셨다.

27살에 처음 면허를 따고 차를 샀을 때, 부모님의 도움 없이 내 힘으로 차를 구입했다.

동생이 먼저 차를 구입했는데, 어린 나이가 할부로 구입하려면 부모님의 동의와 인감이 필요했다.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차를 사는 막내를 못마땅해했다.


나도 차를 사고 싶었는데, 동생처럼 핀잔을 들을까 봐 부모님의 보증 없이 차를 샀다.

그러려면 30%의 차량대금이 필요했다. 모아둔 적금을 털어 차를 샀다.


차를 사고 경조사로 이리저리 운전하는데 불려 가면서도 기름값조차 받지 못했지만, 야간대학을 마치고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올 때 아버지는 나를 기다리며 장례식장에 가자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런 아버지의 행동이 싫었던 것 같다. 차를 사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줬더라면 서운한 마음은 들지 않았을 텐데..

아마도 차를 사는 데 도움을 주셨더라도 나는 그 일을 미뤘을 것이다.

오빠들도 있는데, 꼭 왜 나여야 하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가끔 아는 분들을 찾아 인사를 하셨던 것 같다.

그날도 연락이 뜸했던 작은 아버지를 만났고, 예전에는 돈이 많고 화려한 집에서 살던 작은 아버지가 이제는 단칸방에서 작은 엄마와 함께 외로이 지내고 계셨다.

그것도 늙고 병든 채...

하루 동안 세 군데 정도를 만난 것 같은데, 길치인 내가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 아버지의 안내로 운전했던 것이 정말 기적 같고 다행이었다.

오늘 문득 아버지가 생각났다.

그리고 아버지와 단둘이 차를 타고 친척집을 돌아다녔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그때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형제들 중에 나와 함께 가자고 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버지는 친척들에게 나를 어떻게 소개하려고 하셨을까?

내가 만약 아버지였다면,

내가 없더라도 내 딸을 기억해 주세요’라는 마음이었을까?


아버지는 스스로 나이가 들어가며 죽음을 준비하고 계신 것 같았다.

그 준비하는 순간은 여전히 건강했지만, 나는 그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나는 그저 차를 운전하고, 화가 난 듯 뿌루퉁한 내 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긴장하고 눈치를 보셨을 것이다.

내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라고 말이다.

소통의 부재… 이것은 핑계일 뿐이며, 나의 잘못을 합리화하려는 거짓말이다.

소통은 말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 사람의 행동과 표정으로도 알 수 있다.

그날 아버지가 식사하자고 하셨을 때, 나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


아버지와의 식사는 항상 어색했다.

어린 시절부터 식사 자리에서는 아버지의 잔소리가 시작되었고, 부모님의 싸움으로 밥상이 엎어지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와 대면하며 먹는 식사가 싫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아버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며, 아버지도 나처럼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나에게 사과하고 싶어 일부러 시간을 내신 것일지도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아버지와 엄마, 내 동생과 나, 이렇게 넷이서 찍은 사진을 찾았다.

엄마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으셨고, 아버지는 멋진 양복을 입고 버스를 기다리며 잠깐 화장실 앞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아버지는 한껏 웃고 계셨지만, 엄마와 우리는 울상이었다.


아버지는 여행이 즐거우신 건지,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 즐거우신 건지 모르지만, 집안에만 있고 싶어 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라 의외였다.


형제가 많아 모든 형제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의 마음속에는 가까이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사람의 마음은 항상 공허하며, 그것을 채워줄 사람은 가족이다.

가족이 떠나가면 그 자리에 후회와 상처, 눈물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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