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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소리 지르는 것은...

네가 가는 길이 위험한 곳이기 때문이야

by 신수현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늘 고요했다.

아버지는 말수가 적었고, 감정을 드러내는 법도 드물었다.

그 조용함 뒤에는 언제나 긴장감이 감돌았다.

엄마와는 자주 다투셨지만, 자식들에게 직접 화를 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대신 큰오빠가 형제들 대표로 혼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말없이 쏘아보는 아버지의 눈빛 하나에 우리는 숨죽였다.

그렇게 자란 나는 아버지가 무서웠다.

집은 언제나 불안정한 땅 같았다.

아버지가 나에게 직접 화를 내지 않으셨지만, 나는 그의 기분과 발걸음 소리에 늘 예민하게 반응했다.

술에 취해 마당을 서성이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이불속에 숨죽이며 잠든 척했다.

마치 그렇게 하면 위협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몸과 마음이 모두 변했다. 더 예민해지고, 더 자주 소리치셨다.

엄마뿐 아니라 오빠와 언니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점점 낯설고 두려워졌다.

나는 그런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대학 진학보다 독립이 먼저였다. 고등학교도 야간학교를 다니며 일하고 싶다고 했지만, 부모님은 반대했다.

결국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나는 자격증을 따며 하루라도 빨리 취업할 준비를 했다.


그렇게 집을 떠났다.

기대했던 자유는 없었다.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외로웠다.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도, 기댈 곳도 없었다.

유일한 위로는 시골에 사는 언니와 만나는 날이었다.

언니와 함께하는 시간은 따뜻하고 편안했지만, 기차역에서 헤어질 때면 마음이 무거웠다. 괜히 눈물이 나고, 돌아가는 길이 아득했다.


그 시절 나는 간절히 바랐다.

아버지가 조금만 늙었으면, 조금만 약해졌으면 좋겠다고. 나는 빨리 독립하고 싶었고, 아버지의 존재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부정적인 바람은 너무 쉽게 이루어졌다.

아버지의 건강은 점점 나빠졌고, 목소리는 더욱 날카로워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하다. 좋은 바람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데, 원망 섞인 바람은 유난히도 잘 이루어진다.


오래 지나서야 깨달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쉽게 소리치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때로는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가 아이를 찾고 나서 더 큰 소리를 치는 것처럼, 그것은 미움이 아니라 걱정의 표현이었다.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에서 가수 김승진 씨가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TV 앞에서 숨이 막혔다. “아버지가 독재자 같았다”는 그의 말이 내 마음을 그대로 옮긴 듯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아버지를 꼭 한번 안아보고 싶다”는 고백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랬다.

교회에서 봉사하시던 나이 든 집사님을 본 순간, 나는 무심코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 하고 부를 뻔했다.

나는 깨달았다. 어릴 적 아버지의 고함과 야단은 억압이나 분노가 아니었다. “그 친구들이랑 어울리지 마.” “그 길 계속 가면 절벽이다.” 그 말들은 사랑의 방식이었다.

위험을 알기에, 아버지의 언어는 고함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달랐다. 나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다고 믿으며 천천히 걸었지만, 아버지는 그리 많지 않은 시간을 붙들고 있었다. 그래서 조급했고, 더 자주, 더 크게 소리쳤다.


시간은 아이를 급하게 만들지 않는다. 성격 급한 아기는 없다. 하지만 어른은 급해진다. 사랑하는 이가 잘못된 길로 가는 걸 보면, 그저 지켜볼 수 없으니까.

아버지가 소리쳤던 건 내가 미워서가 아니라, 내가 너무 소중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 고함은 “그 길로 가지 마라”는 외침이자, “제발 돌아오라”는 신호였을 것이다.

아버지가 소리 지르는 건... 내가 가는 길이 위험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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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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