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지막 손짓

마지막 순간은 어색함마저 녹여낸다

by 신수현

아버지의 기운이 서서히 사라질 때쯤, 나는 더 가까이 다가가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때 내 형편은 넉넉지 않았고, 승용차 한 대 없던 나는 시골에 가려면 꼭 대중교통에 의존해야 했다.


아침에 출발해도 당일치기로 다녀오려면 꼬박 여덟시간을 써야 했고, 그 길은 늘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다.

만약 지금처럼 어디든 달려갈 수 있는 승용차가 있었다면, 아버지와 더 많은 시간을 나눌 수 있었을까?


오늘따라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마주했던 그 장면이선명히 떠오른다.

엄마는 3년 동안 “이번이 아버지 마지막인 것 같아. 이번 생신엔 꼭 내려와” “이번 여름엔 펜션에서 보내자. 아버지와의 마지막일지도 몰라”라며 다급히 말씀하셨다.


처음엔 걱정 섞인 말로 들렸지만, 해마다 반복되니 어느새 ‘또 마지막이라 하시네’ 하며 무뎌졌다.

그러나 진짜 마지막은 예고 없이, 갑자기, 쉽게 불쑥 찾아왔다.


그날도 엄마는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아버지, 이번엔 정말 마지막 같아. 숨을 못 쉬어 꼭 와야 돼.”

나는 하루 휴가를 내고 터미널로 향했다.

남부터미널 시골행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뿐인데, 이상하게도 갈 때마다 10분쯤 늦어 다음 차를 기다리며 한 시간을 허비했다.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내며 ‘이 시간을 다른 데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버스 탔어? 아버지 괜찮아. 힘들면 안 와도 돼”

엄마의 안도 섞인 말이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지만, 나는 안도의 한숨보다 ‘내 시간을 또 뺏겼다’는 불평이 먼저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래도 억지로 “그래도 갈게”라며 버스에 올랐다.

아버지의 모습은 내 기억 속 건강하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푸른 기운 가득하던 얼굴빛은 사라지고, 햇볕에 말라버린 장작처럼 힘 빠진 몸으로 누워 계셨다. 그 모습은 너무 낯설고 두려웠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언제나 부지런하고 강인했다. 새벽이면 일어나 장화를 신고 논으로 나가셨고, 오늘같이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흙이 묻은 장화를 신고 논으로 향하셨다.

아버지의 시간은 강했고, 흔들리지 않았다. 누군가의 손으로 일어서본적이 없는 강한 분이셨다.


하지만 그날 내가 본 아버지의 손은 힘이 빠져 한없이 가벼워 보였다. 내가 “아버지” 하고 불러도 알아보지 못했지만, 내 목소리에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셨다.

그 손짓의 의미를 몰라 얼떨결에 손을 내려드리고 “저 왔어요”라는 말만 남기고 방을 나왔다.


낯설어진 아버지 앞에서 어떤 말도 건네지 못했다.

마음속에선 ‘기억이 사라졌을 뿐, 아버지는 여전히 살아 계신데… 왜 엄마는 나를 이렇게 힘들게 오라고 하는 걸까’ 하는 불평만 가졌다.

내일 출근해야 하고, 나는 아버지와 보내는 시간보다 나의 안락한 시간이 필요해서 집에 돌아가 쉬고 싶었다.


엄마는 그런 내 모습이 안쓰러웠을까, 아니면 이해가 안 됐을까. 다만 엄마는 내가 아버지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길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시간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것이 내가 본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뒤늦게 깨달았다. 아버지가 힘겹게 손을 드신 것은 마지막까지 나를 안아주고 싶었던 몸짓이었다는 것을…


평생 단 한 번도 포옹을 나눈 적 없는 부녀였지만, 마지막 순간에 아버지는 그 어색함마저 넘어서려 하셨던 것이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매주 성도들과 허깅을 한다.

처음엔 너무 낯설고 싫었다. 차라리 악수가 낫지, 껴안는다는 건 나에겐 불편한 의식이었다. ‘사랑해’라는 말은 더더욱 꺼내기 힘든 단어였다.

그래서 늘 ‘나는 그런 말 못 해’라며 내 어색함을 변명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아버지 세대는 더 그랬다.

일제강점기와 전쟁, 가난을 겪으며 사랑을 말하거나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가족을 지키는 것이 사랑의 전부였던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는 평생 포옹을 해본 적 없지만, 마지막 순간만큼은 그 벽을 넘으려 하셨던 게 아닐까?


만약 그 손짓이 평소 일상적인 표현이었다면, 나는 그 의미를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 손을 붙잡아 안아드리지 못했다. 그게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다.


나는 여전히 어색한 사람이다. 지금도 누군가에게 쉽게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고, “나는 사람 비위 맞추는 거 못해”라며 내 성격을 단정 짓곤 한다.

하지만 조금씩 변하고 있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마지막 순간, 어색함을 넘어 간절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몸이 부서지는 고통 속에서도 손을 들어 올려주셨다.

그 손은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너를 안아주고 싶다. 마지막까지 너를 사랑한다.”

그 손짓을 이제야 이해한다. 그리고 나도 다짐한다.

언젠가 내게도 마지막 순간이 올 때, 나는 어색함을 이겨내고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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