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을 사면 따라오는 것이 있다. 사용설명서다.
대충 넘기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늘 꼼꼼히 읽는다.
구성품 확인부터 사용법, 고장 시 대처법, 무상 A/S 기간, 고객센터 번호까지.
모든 것이 그 안에 적혀 있다.
설명서는 길잡이다.
처음 쓰는 사람에겐 안내서가 되고, 오래 쓴 사람에겐 문제의 원인을 알려준다.
때로는 고장을 예방하는 조언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가장 오래 곁에 있었던 존재,
아버지에게는 사용설명서가 없었다.
아버지는 늘 단단한 존재였다.
고집이 세고, 말이 없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술에 취하면 가끔 노래를 흥얼거렸고, 화가 나면 큰소리도 냈다.
하지만 그 앞에서는 누구보다 소심해졌다.
원칙을 지키며, 묵묵히 제 할 일을 했다.
우리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고집불통’, ‘독재자’, ‘독선적’ 같은 말들로 아버지를 규정했다.
나 또한 속으로 바랐다. 아버지가 빨리 늙었으면 좋겠다고.
아버지는 철 같았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부서지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정기적으로 닦아주고, 기름칠을 해주어야 수명이 길어집니다.”
“제품도 사람처럼 매일 닦아주고 마주해야 오래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설명서는 보증기간은 알려주지만,
사용이 끝나는 시간은 알려주지 않는다.
아버지도 그랬다.
언제 지쳤는지, 어디가 아픈지, 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는지
우리는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