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지독한 독감이 내 몸을 점령했다. 그것은 단순한 질병이라기보다, 내 안의 생명력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투명한 짐승 같았다. 열흘 동안 나는 앓아누웠다. 이불을 겹겹이 두르고 몸을 태아처럼 웅크렸지만, 냉기는 예리한 칼날이 되어 등뼈 사이사이를 파고들었다.
표현할 수 없는 한기였다. 그것은 외부의 기온이 낮은 탓이 아니라, 내 혈관 속에 아주 오래전부터 얼어붙어 있던 어떤 기억의 덩어리가 녹지 않고 부유하는 듯한 감각이었다. 얼음송곳이 살갗을 뚫고 내밀한 장기들 사이를 헤집는 기분. 아직 본격적인 겨울이 당도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이미 세상에서 가장 외딴 빙하 위에 홀로 버려진 존재가 되어 있었다.
어둠 속에서 나는 떨었다. 돌돌 말린 이불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내 몸의 온기가 조금씩 소멸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그 시리고 아득한 시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추위는 물리적인 현상이 아니라, 어쩌면 견뎌야만 하는 삶의 문장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숫자가 증명하는 가난의 무게
12월,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가 도착했다. 종이 위에 인쇄된 숫자는 잔인했다. 치솟은 난방비 수치는 내가 독감과 사투를 벌이며 보일러를 돌렸던 그 처절한 시간들의 기록이었다. 나는 그 숫자를 한참 동안 응시했다. 그것은 따뜻함의 대가였으나, 동시에 내가 감당하기 힘든 삶의 부채처럼 느껴졌다.
1월이 되자 나는 스스로를 검열하기 시작했다. 거실의 난방을 완전히 차단했다. 침실도 가장 작은 방 하나만을 택해, 잠들기 직전에만 온도를 올렸다. 출근할 때는 '외출'로 설정해 두고, 퇴근 후 돌아와 얼음장 같은 공기를 마주하며 서서히 온도를 높였다.
사람들은 말한다. 껐다 켰다 하는 것이 오히려 에너지를 더 소모한다고. 하지만 나에게 중요한 것은 효율이 아니라, 내가 이 공간의 온도를 '통제'하고 있다는 안도감이었다. 24도에서 23도로, 다시 실내 온도와 거의 차이가 없는 온도로 설정값을 내렸다.
지금 나는 집 안에서도 두꺼운 수면양말을 신고 있다.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 끝은 감각이 무뎌질 만큼 시리다. 입을 열면 하얀 입김이 나올 것만 같은 침묵 속에서, 나는 문득 아버지를 본다. 내 기억 속 어딘가에 박제되어 있던 그 사내의 뒷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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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기다리며 글을 씁니다. 멈춘듯, 흐르지 않는 어둠과 함께 ... 시간에 대한 후회, 반복되는 상처로 인해 글은 저의 치료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