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나무, 아버지의 시간은 그렇게 말라갔다.

by 신수현

쇠붙이가 지나간 자리


칼을 찌르는 것보다 빼내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나는 아주 늦게 알았다. 쇠날 이 살을 가르고 들어갈 때의 파열음보다, 그것을 거두어들일 때 들러붙은 생의 감각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더 처연하다는 것을.


어떤 상처는 박혀 있을 때보다 부재할 때 더 선명해진다. 칼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공동(空洞), 그 텅 빈 동굴 속으로 차가운 바람이 드나들기 시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저질렀는지 깨닫는다. 그것은 찌른 자의 후회와는 다른 층위의 고통이다. 찌른 자는 칼날을 닦으면 그만이지만, 남겨진 자는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자신의 남은 생을 다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보았던 동화 속의 아이는 분노가 치밀 때마다 나무에 못을 박았다. 아버지는 그것이 감정의 배설이라 가르쳤을지 모른다. 나무는 묵묵히 쇠붙이를 받아냈다. 하지만 아이가 모든 못을 뽑아냈을 때, 나무는 텅 빈 가슴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나는 그 장면에서 멈춰 선다. 나무를 쓰러뜨린 것은 못의 무게가 아니라, 못이 빠져나간 자리에 남은 ‘없음’의 무게였다.



수분이 빠져나가는 소리


사람들은 부모를 거대한 나무에 비유하길 즐긴다. 언제나 그 자리에 서서 그늘을 내어주는 무구한 존재라고. 하지만 내가 본 아버지는 조금 달랐다. 아버지는 박히는 못마다 수분을 잃어가는 나무였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신수현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새벽을 기다리며 글을 씁니다. 멈춘듯, 흐르지 않는 어둠과 함께 ... 시간에 대한 후회, 반복되는 상처로 인해 글은 저의 치료자입니다.

100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7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71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27화부전여전(父傳女傳) — 추위의 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