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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_모래시계

모든것을 비워야만 새롭게 채워진다

by 신수현


송구영신(送舊迎新)-나만의 모래시계


‘送舊迎新 송구영신’의 사전적 의미는 ‘지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나에게 송구영신은 단순히 시간의 흐름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선다. 그것은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정리하고, 비워냄으로써 새로운 시간을 채우는 과정이자, 인생의 한 장을 마무리하고 다음 장을 준비하는 의식처럼 느껴진다.


내가 맞이했던 어린 시절의 송구영신 풍습은 항상 설렘으로 가득했다. 내가 자랐던 강원도의 작은 시골 마을은 과자를 먹고 싶어도 1km 이상 걸어야만 구할 수 있는 곳이었다. 형제가 많았던 탓에 아버지는 평소에 군것질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에게 군것질은 특별한 날에만 허락된 작은 축제 같았다. 생일이나 소품, 운동회가 그런 날들이었고, 또 하나는 바로 12월 31일이었다. 그날 밤이면 우리는 엄마가 만들어주신 야식을 기다리며 형제들이 둘러앉아 윷놀이를 즐겼다. 시골에서 경험했던 12월 31일의 밤은 온 세상이 고요해지는 시간이었다. 어두운 하늘 아래 눈이 소복이 쌓인 앞마당에서 들어오던 아버지의 농담이 아직도 생생하다. “일찍 자면 눈썹이 하얘진다.”라는 말에 졸린 눈꺼풀을 애써 들어 올리며 새해를 기다리던 시간이 떠오른다. 그렇게 맞이한 1월 1일의 새벽은 아버지의 온기를 담은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아버지는 이제 내 곁에 계시지 않지만, 나는 여전히 송구영신을 기다린다. 어린 시절의 설렘은 이제 교회의 송구영신 예배로 이어졌다. 찬양과 말씀, 그리고 기도로 새해를 맞이하며, 나의 마음속에는 그리움과 새로움이 어우러진 풍경이 그려진다.


교회의 송구영신 예배는 찬양과 말씀으로 시작된다. 예배가 끝나갈 무렵,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교회는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기도로 가득 찬다. 그 순간, 나는 지나간 시간을 떠나보내고 다가올 시간을 온 마음으로 맞이하며 새해를 시작한다.

송구영신을 색으로 비유하자면, 12월 31일은 검은색, 1월 1일은 하얀색이다. 검은색은 지나온 날들의 무게와 어두움을 담고 있다. 때로는 지치고 아팠던 시간이 그 안에 머무르기도 한다. 반면, 1월 1일의 하얀색은 새로움을 향한 희망과 시작을 품고 있다. 물론, 새해의 나날들이 모두 하얗게 빛나기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긴 터널의 끝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한 줄기 빛처럼, 새해 첫날은 나에게 앞으로 나아갈 용기와 기대를 준다.


어떤 이들에게는 새해의 시작이 희망으로 가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 새해는 그리 희망적이지 않게 느껴질 때가 있다. 12월 31일까지의 고통이 끊이지 않고 이어질 것 같은 불안감 속에서, 새해 첫날이 1월 1일이 아닌 12월 32일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둡고 긴 터널에도 끝이 있듯이, 고통의 시간도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라 믿고 싶다. 터널의 벽을 손으로 더듬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마침내 새벽의 빛을 만나게 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지금은 그 빛이 희미할지라도, 언젠가는 찬란한 아침으로 나를 인도할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올해 새해를 맞으며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지금 나의 빈손은 단순히 궁핍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니, 이 빈손 위에 기적이 채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이 기도는 비워진 물질이 관계의 빈자리를 통해, 새로운 시간과 의미로 채워질 수 있기를 바라는 나의 간절한 마음을 담고 있다.


송구영신의 의미를 되새기다 보니, 어린 시절 언니가 사 온 모래시계가 문득 떠올랐다. 투명한 유리병 속에서 분홍빛 모래알이 천천히 흘러내리던 모습은 시간의 이치를 담고 있는 듯했다. 정해진 속도로 흐르는 모래알은, 시간이 흐르는 것을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러주는 듯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새로운 것을 채우는 방식이 아니라, 비우고 뒤집히는 반복을 통해 새로운 시간이 주어진다는 점이었다. 모래시계는 아무리 뒤집어도 정해진 양의 모래가 천천히 아래로 떨어질 뿐, 그 속도를 바꾸거나 거스를 수 없었다. 모든 모래가 비워지고 나서야 다시 뒤집혀 새로운 흐름이 시작되듯, 우리 삶의 고통스러운 시간도 끝을 보게 되면 결국, 새로운 시간으로 채워질 것이다.


모래시계처럼 인간이 쥐고 있던 물질, 관계, 본성이 바닥을 보일 때가 있다. 그 순간, 우리는 나와 타인을 비교하며 현재 처한 환경에 대해 자신을 책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을 바라보면, 그것은 누구에게나 같은 방식으로 흐르고 채워지는 법이다. 단지 그 흐름이 시작되는 시점이 다를 뿐, 시간은 누구도 예외없이 바닥을 드러내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모든 것은 결국 바닥을 드러내야만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수 있다. 모래시계 속 모래알이 완전히 비워지기 전에는 다시 뒤집힐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삶도 끝까지 비워져야 비로소 새로운 시작을 준비할 수 있다. 때로는 누군가의 작은 손길로 상황이 바뀌듯, 고통스러운 시간이 생각보다 쉽게 끝날 수도 있고, 그 속에서 희망의 빛을 발견할 수도 있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길은 그 고통이 끝을 보아야만 가능하다. 그리고 다시 모래시계가 뒤집히는 순간, 새롭게 채워지는 시간과 함께 우리는 한 단계 더 성장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나 역시 이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고통의 끝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비워지는 과정은 두렵고 고통스럽지만, 그 비움이야말로 새로운 시간을 채우는 전제가 된다. 결국, 모든 것을 비워야만 새로운 것이 채워질 수 있는 이 법칙이야말로, 시간이 가진 신비이자, 인생의 이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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