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베어낸 단면을 바라보면, 그 안에 숨겨진 나이테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이테는 마치 나무의 생애를 기록한 연대기처럼, 둥글게 쌓인 고리들이 그 나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겹, 한 겹 나이테를 따라가다 보면, 그 나무가 살아온 시간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상상할 수가 있다. 잘려 나간 오래된 나무를 보면 하나의 고리가 1년을 버티는 것으로 추정한다. 인간도 사계절의 시간을 함께 보내야 1년을 가지는 것처럼 나무의 고리도 1년이 지나야 생기는 것처럼 인간의 나이와 비슷하다.
나이테를 보면 시간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나이테는 나무의 시간만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나무가 처음 심어진 시간부터 사계절의 순환과 사계절의 변화까지 모두 담고 있다. 인간의 삶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나무가 자라면서 흔적을 남기듯, 사람도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나이테를 새기며 살아간다.
어떤 나이테는 깨끗하고 고르게 형성되어 있다. 이는 나무가 좋은 환경에서 평온하게 자란 증거다. 그러나 어떤 나이테는 흐트러지고 왜곡되어 있다. 바람과 병충해를 견디며 힘겹게 버틴 흔적이다. 우리 인생에도 그런 고리가 있지 않을까? 어떤 이에겐 별다른 어려움 없이 또는 행복한 시간을 함께했다면 그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을 것이고, 어떤 이에겐 고난과 시련 속에서 마음이 흔들리고 금이 갔던 순간들이 있다면 일 년이라는 시간은 너무나 느리게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시간은 멈춰있지 않는다. 사계절의 순환처럼 인간의 삶도 그럴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너무나 불행하다.
나는 나이테의 흔적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내 스스로의 나이테를 그린다면 어떤 모습일까? 나무처럼 고르게 뻗어나갔을까? 아니면 고통 속에 뒤틀려 있을까? 어쩌면 나의 나이테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속에 분명히 새겨져 있을 것이다. 그 고리를 따라가다 보면 내가 지나온 길이 보인다. 어떤 시절은 빛이 났었고, 어떤 시절은 고통스러웠지만, 그 모든 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무의 나이테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완벽해서가 아니다. 컴퍼스로 그리듯 이쁜 라운드가 아니고 찌그러져 있기도 하며, 일 년과 일 년 사이가 동일하지 않게 넓기도 하고 좁기도 하다. 그 안에 담긴 결점과 고난, 생존의 흔적이 모두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넘어지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는 순간에 깊은 상처를 입기도 한다. 완벽하지 않기에 매 순간이 성장하고 발전되며 시간과 함께하는 경험이 단단하게 만든다.
가끔 오래된 나무를 볼 때가 있다. 그 나무를 보며 "이 나무의 나이테는 어떤 시간을 함께하는 걸까?" 시간은 우리를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성장시킨다. 비록 그 시간이 우리에게 어려움을 안겨줄 때도 있지만, 그것은 결국 우리가 더 깊고 넓은 사람이 되도록 돕는다.
나무의 나이테는 절대로 서두르지 않는다. 해마다 한 겹씩, 한 겹씩 자신만의 속도로 쌓여간다. 우리 삶도 그렇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오늘의 우리는 어제의 나이테 위에 만들어지고, 내일의 우리는 오늘의 흔적 위에 쌓인다.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는 더 큰 나무로 자라난다.
나이테를 바라보며 삶의 어느 순간에도 나의 나이테를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나의 나이테가 울퉁불퉁하며 고르지 않고, 남들 보기에 좋은 평가를 받지 않더라도, 그 시간은 나에겐 인생을 마감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며 울퉁불퉁한 나의 마음도,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떨어지는 것이라도 나무와 나뭇잎이 함께 하는 시간은 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예쁘든, 울퉁불퉁하고 흐트러져 있든, 그것이 바로 나의 시간이며, 나만의 이야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