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의 고향 집은 마을의 가장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끝자락'이라는 표현이 조금 어색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엄마는 항상 그렇게 우리 집의 위치를 설명하곤 했다.
우리 집에 가려면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내린 후 시장을 지나야 했다. 시장을 빠져나와 500미터를 걸어 다리를 건너면 마을회관과 경로당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 작은 길로 쭉 들어가면 드디어 우리 집이 나타난다. 우리 집 옆에는 두 그루의 큰 밤나무와 대추나무가 있어, 마치 나의 오랜 친구처럼 함께해 왔다. 그 나무를 둘러싼 푸른 평야에 놓인 익지 않은 벼들은 여름에는 푸르르고, 가을에는 황금빛으로 물들며, 겨울에는 잘려 논에 뿌리만 남아있다.
어릴 적 주말마다 언니의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오곤 했다. 그 언니는 멀리서 살았고, 그 시절에는 버스가 드물어 걸어서 2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였다. 우리 집 앞에는 큰 강이 흐르고, 그 위에 다리가 하나 있었다. 그 다리는 그리 튼튼해 보이지 않았고, 마치 커다란 파이프를 반으로 쪼갠 듯한 모습이었다. 그 다리를 건너면 언니의 집이 있었고, 토요일이면 언니는 흔들리는 다리를 건너서 집으로 돌아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다리는 사라졌다. 아마도 파이프 모양의 다리는 흔들거리고 녹이 슬어 위험하기 때문에 없앤 것 같다.
40년이 지난 지금,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할 때마다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집 뒤로 새로운 콘크리트 도로가 생겨났고, 트럭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넓어졌다. 어릴 적, 우리 집 에는 큰 논이 있었고, 그곳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부모님은 모내기와 벼 베기를 위해 자주 그곳을 오가셨고, 피곤할 때면 작은 천막을 치고 쉬기도 했다.
처음에는 우리 논이 전부인 줄 알았지만, 일부는 다른 분이 소유하고 있었다. 그분은 자전거를 타고 오셨고, 그래서 큰 평야는 두 개로 나뉘어 있었다. 처음에는 논외에 길이 없었지만, 논과 논 사이로, 흙으로 덮어 둑을 만들어 길을 냈다. 그랬더니 자전거 정도는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길이 만들어졌다.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폭이 좁은 길에서, 경운기가 지나갈 정도로 길이 넓어졌다. 그 길이 생기기 전에는 친척들이 모두 우리 집에서 나와 같은 길로 돌아가야 했다. 작은 길을 따라 마을회관과 경로당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시장을 거쳐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고, 그 큰길로 나가면 서울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처음에는 경차가 지나갈 정도로 좁았고, 반대편에서 차가 오면 지나가기 어려웠다. 어릴 적 읽었던 염소의 이야기가 떠오르듯, 후진하기 어려운 상황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본가를 떠나 10여 년을 타지에서 살았다.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고향을 찾지 못했지만, 10년이 지난 시골집은 트럭이 지나갈 정도로 길이 넓어졌다.
40년이 지난 지금, 아버지는 하늘로 떠나셨고, 엄마는 나이가 많아져 건강이 더 악화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어릴 적에는 시골집이 싫어 도시로만 나가고 싶었고, 나만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야간대학생으로 일과 공부를 병행했지만, 30대와 40대가 되어도 나의 진로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었다.
길이란 허허벌판에 길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야 할 곳으로 수백 번, 수천 번 왕복하며 생기는 것임을 깨달았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내가 갔던 길을 따라간다면, 또 내가 그들이 가는 길을 그대로 따라갔다면, 그 길은 더 빨리 생겼을지도 모른다.
길 하나가 생기면 우리는 새로운 길을 만들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그저 기존에 길을 확장하는 것뿐이다. 내가 갔던 길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길이 길어지고, 좁다고 느껴지면 폭을 넓히고, 그렇게 길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신비로움이 있다.
길이란 단순하고도 기다릴 줄 아는 인내와 끈기가 있어야만 만들어진다. 한두 번 해보고 포기하고, 누군가 다른 길이 있다고 해서 그 길을 따라가려 한다면, 나의 길은 더 길어지고 다시 돌아오는 시간은 어린 시절보다 더 이전이 된다.
길이란 머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남들이 무모해 보일지라도, 내 몸이 이끄는 대로 왕복한다면 언젠가 나의 길이 생길 것이다. 누군가가 내 길을 넓히고 확장해 준다면 정말 뜻깊은 일이 될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