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20일. 그날 이후로 세상의 계절은 수천 번 살갗을 바꾸며 흘러갔지만, 나의 시간은 종종 그날의 서늘한 습기 속에 갇혀 숨을 죽입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지 십 년에 가까운 세월이 겹겹이 쌓였음에도, 그는 여전히 나의 밤을 가르고 들어옵니다. 기이하게도 나의 꿈속에서 그는 단 한 번도 흐릿하게 바랜 적이 없습니다.
꿈은 지독하게도 생생한 천연색(Color)입니다. 눈을 감고 있는 나의 눈꺼풀 사이로 칠흑 같은 어둠이 쏟아져 들어와도, 꿈속의 그는 눈이 시릴 만큼 화려한 색채를 입고 나타납니다. 생전에 아버지가 즐겨 입던, 아니 그 옷밖에 없는 러닝셔츠, 생전에 라면은 드시지 않던 아버지가 꿈속에서 혼자 드시던 라면, 나를 응시하며 오지 말라고 손짓하던 다급한 아버지의 행동들. 어둠 속에서 나는 그 선명한 채도에 눈을 찌푸리며, 이것이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환각임을 직감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더 이상 병들지 않았고, 무겁지도 않으며, 다만 살아있는 자의 농밀한 색채를 발산하며 내 앞에 서 있습니다.
늙어버린 호랑이를 향한, 잔인한 기도
어린 시절, 나에게 아버지는 한 마리의 거대한 호랑이였습니다. 아버지의 발소리는 집안의 공기를 일순간 얼어붙게 만드는 냉기였고, 아버지의 호령은 나의 연약한 세계를 산산조각 내는 천둥이었습니다. 나는, 아니 우리 가족은 포식자의 그늘 아래에서 숨을 죽이며, 아버지가 무서웠고, 때로는 아버지가 사라지기를 기다리며, 아버지를 증오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매일 밤, 어린아이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은밀하고도 잔인한 기도를 올렸습니다.
‘아버지가 빨리 늙어버렸으면 좋겠어 늙은 호랑이처럼 목소리도 낼 수 없고, 이빨도 빠지고 발톱이 빠져 움직이지 않았으며 좋겠어,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
그 호랑이가 기운을 잃어 더 이상 포효하지 못하기를, 날카로운 이빨이 뿌리째 뽑히고 무시무시한 발톱이 닳아 없어져 버리기를 바랐습니다.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 쇠약해져서, 더 이상 나를 위협하지 못하는 무력한 고깃덩어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조금 더 숨을 크게 쉴 수 있을 것 같았고, 나의 영토가 비로소 평화로워질 것만 같았습니다.
시간은 나의 잔인한 소원을 비웃기라도 하듯 너무나 성급하게 흘러갔습니다. 어느 날 문득 마주한 그는 정말로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거칠게 포효하던 목소리는 젖은 종이가 찢어지는 듯한 가느다란 신음으로 변했고, 단단했던 근육은 야윈 살갗 아래로 흔적도 없이 소멸했습니다. 나의 소원은 그렇게나 빨리, 그리고 너무나 참혹한 방식으로 내 눈앞에 현현했습니다.
3년의 침묵, 돌아서지 못한 마음의 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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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기다리며 글을 씁니다. 멈춘듯, 흐르지 않는 어둠과 함께 ... 시간에 대한 후회, 반복되는 상처로 인해 글은 저의 치료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