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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절"이라는 가면을 쓴 사람

면접만 50번, 나는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사람이다.

by 신수현

면접 50번, 나는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 넘게 걸려 도착한 면접장.

구리빛 철문 너머 사무실 내부가 보이지 않는 그곳. 문을 열고 들어가면, 면접관은 내 이력서를 살펴보지도 않은 채 앉아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연락드릴게요."

몇 번을 겪었으면서도, 나는 또 그 말을 믿는다.

심지어 정확한 날짜까지 제시하며 연락을 주겠다는 곳도 있었다.

"추석 지나고 10월 5일까지 연락드릴게요."

그 말을 듣고, 나는 다른 면접을 잡지 않고 기다렸다.

혹시 이곳에서 연락이 오면 어떻게 하지? 괜히 다른 곳과 겹치면 곤란하겠지? 그런 마음으로 보름을 기다렸다. 하지만 결국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몇 주가 흘렀고, 나는 다시 새로운 구직 활동을 시작해야 했다.

한국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나에게, 이 짧은 한마디는 희망고문이 되었다.



연락드릴게요 = 거절의 완곡한 표현


면접을 많이 보다 보니, 면접관들의 말에서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흔한 말이 바로 "연락드릴게요."

기업 입장에서는 직접적으로 거절하기 어려우니,

"몇 명 더 보고 연락드릴게요." 라며 에둘러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연락이 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기다리다 못해 내가 먼저 연락해보기도 했다.

"면접 결과가 궁금해서 연락드렸습니다."

그러면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아… 연락 안 갔으면 안 된 거죠."

간단한 문자 한 줄이면 될 것을, 왜 굳이 애매하게 말해 사람을 기다리게 만드는 걸까?

구직자는 회사의 연락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고, 다른 면접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한마디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시간을 빼앗는 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들은 모르는 걸까?


면접을 볼 때 이미 채용 여부는 정해져 있다.

지난 면접들을 돌아보면, 채용하는 곳은 대부분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면접이 끝난 직후 바로 "언제 출근 가능하세요?"라고 묻거나, 늦어도 다음 날 안에 채용합격 연락을 주었다.

반대로 "며칠 내로 연락드릴게요."라는 말을 들었다면,

그건 대부분 거절이었다.

기업은 더 적합한 사람을 찾고 싶어 하지만, 사실 면접을 보는 순간 이 사람과 함께할 것인지 아닌지는 이미 결정된 경우가 많다.

"같이 일해봐야 안다."*라는 말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면접 때 이미 답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나는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구직자의 시간도 소중하다.


어느 날, 강남에서 면접을 보라는 연락을 받았다.

출퇴근 거리는 부담스러웠지만, 일단 면접을 보러 가보기로 했다.

그러나 면접장에서 면접관이 이력서를 펴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음… 우리가 원하는 경력과는 조금 다르네요."

순간 어이가 없었다.

이력서를 제대로 보지도 않았으면서 왜 면접을 보라고 한 걸까?

면접은 구직자에게도 시간 투자다.

나는 면접을 보기 전, 회사 정보를 찾아보고, 어떤 업무를 하는지 확인하고 간다.

그런데 정작 회사는 지원자의 이력서조차 읽지 않은 채 면접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구직자도 자신의 시간을 소중히 해야 한다.

기업이 근로자를 평가하는 것처럼, 구직자도 기업을 평가해야 한다.



장기 실직자의 현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장벽


나는 장기간 실직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나를 채용해 준 곳이 있었고, 나는 최선을 다해 일했다.

그런데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면접에서 계속 탈락했던 이유 중 하나가,

과거 함께 일했던 세무사가 내 평판을 좋지 않게 이야기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 사람은 사무장이랑 사이가 안 좋았어."

"싸우고 나간 사람이야."

물론, 퇴사한 직원에 대해 전 직장이 좋게 이야기할 리는 없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공식적인 평가처럼 받아들여지는 현실이 있었다.

모든 세무사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떤 세무사는 소문에 신경 쓰지 않고 직접 평가하는 사람이었고,

그런 곳에서는 내가 채용될 수 있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평판이라는 장벽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내가 일자리를 구하는 과정이 더 어려웠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는 선택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수십 번의 면접 실패를 거치며, 나는 하나의 기준을 세웠다.

이제는 면접을 볼 때 연봉, 상여금, 야근 여부를 기본적으로 물어본다.

그리고 전임자가 왜 퇴사했는지, 공석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 장부가 지저분한 회사는 아닌지도 확인한다.

기업은 근로자에게 일할 기회를 주지만,

동시에 근로자가 있어야 기업도 운영된다.

면접장에서 위축될 필요도, 기업에게 선택받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다.

이제는 내가 그 기업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고민하며 면접을 본다.

나는 더 이상 선택받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선택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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