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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싹 속았수다.

아버지, 엄마 수고하셨습니다

by 신수현

제목만 보고는, 어린 나이에 시집가 속았다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도 말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뜻을 알고 나니, 눈가가 뜨거워졌다. 제주도와 내가 태어난 강원도는 거리가 멀지만, 그 시절 엄마들의 삶은 어딘가 닮아 있다.


그래서일까. 울고 웃으며 이 드라마를 봤다. 그리고 오래 묵힌 감정을 꺼냈다.

우리 부모님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드라마 속 부부는 사랑으로 서로를 지켰다는 것이다. 현실의 부모님은 사는 게 바빠 서로에게 늘 냉정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지켰다. 사랑을 해도 힘든 게 인생이고, 싸우면서도 살아지는 게 삶이니까.


예전에 어떤 시집에서 봤던 구절이 떠올랐다.
비석에는 태어난 날은 ‘출생’이라 쓰고, 죽은 날은 ‘졸업’이라 쓴다고.
사는 동안 우리는 매년 한 학년씩 올라가는 것처럼, 인간관계도, 가족생활도, 서툰 삶 속에서 성장통을 겪으며 나아가는 게 아닐까.


나는 아버지에게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을 끝내 하지 못했다.


효도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일 뿐인데...
나는 그걸 하지 못해 불효자가 되었다.


드라마 속 인물처럼,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사랑을 배운 사람은 또 다른 사랑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단단한 표정과 담대한 태도는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준 사랑의 흔적이다. 배움을 받지 못했다고, 사랑을 나눌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세상 모든 것이 처음인 부모들이, 아이를 낳고 길러내며 배우고 완성되어간다.
그 서툴고 조심스러운 여정의 끝에서, 아버지는 홀로 남겨질 엄마를 위해 연금을 남기고 떠나셨다. 싸움이 끊이지 않았던 부모님도, 마지막 순간엔 서로의 존재를 걱정했다

.

나는 드라마 속 엄마가 시집을 내듯, 우리 엄마도 인생의 시 한 편쯤은 남기셨으면 좋겠다. 허리가 구부러지고 다리가 불편해도, 시골 텃밭에서 김을 매고, 자식 오면 먹을 것을 한 상 가득 차려내는 우리 엄마...


그 마음 하나로, 나는 오늘도 “엄마, 수고하셨어요”라고, 조용히 마음속으로 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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