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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는 소나기와 같다.

불완전한 관계 앞에서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by 신수현

불완전한 관계 속에서, 나는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책임감, 열정, 자부심이 넘친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고, 끝까지 책임을 지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며, 자기 계발에 소홀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이력서를 들여다보면, 이직이 잦은 편이다.

채용담당자에게는 그것이 ‘망설임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장애물이었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도, 사무실이라는 공간은 마치 돌부리처럼 불쑥불쑥 걸림돌을 내민다. 어떤 사람은 날카롭게, 어떤 사람은 둔하게. 그들 때문에 회사 문을 여는 것이 두려워졌고, 그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 고역이어서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고, 모두가 퇴근한 후에야 사무실을 나서곤 했다.

그들은 나에게 걸림돌이었다. 잔돌처럼 치우며 갈 수 있는 관계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돌은 점점 커졌고, 치우기보다는 돌아가거나 피하는 선택을 해야 했다. 그렇게 피해 다녔지만, 이상하게도 새로운 곳에는 더 큰 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슷한 사람, 비슷한 말투, 비슷한 방식으로 나를 찌르는 이들. 나는 다짐한다. “이번엔 다를 거야.” “저 사람만큼은 아니겠지.” 하지만 결국엔 똑같은 패턴 속에서 상처받았다.

말을 아끼면 마음을 모르겠다며 다가오고, 조금 마음을 열면 그 틈으로 비수를 찌른다. 그들로부터 받은 상처는 마치 소나기 같았다. 일기예보처럼, 예고는 하지만,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다. 준비 없이 맞게 되는 소나기처럼, 나는 갑작스럽게 흠뻑 젖었다. 하지만 소나기는 영원하지 않다. 온몸이 축축하게 젖더라도, 그 뒤에는 뜨거운 햇살이 기다린다.


내게 인간관계란 그런 것이다. 사계절처럼 반복되고, 예측은 어렵지만 지나가게 되어있다.


여름도 아닌, 겨울도 아닌 애매한 온기를 지닌 사람. 이유 없는 냉기를 내뿜는 사람. 온몸에 화를 지닌 사람. 그리고 얼음처럼 차가운 사람. 우리는 그들과 사계절을 보내야 한다.


나는 싸움이 나면 피하는 사람이었다. 가족 간의 싸움도, 회사의 갈등도. 내가 침묵하면 조용해진다는 걸 너무 일찍 배운 탓이다. 그래서 타인의 목소리에 나를 맞췄고, 나의 생각은 늘 뒤로 미뤘다.

그렇게 어릴 적부터 '착한 아이', '순둥이'로 살아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에게 나쁜 사람은 없다. 단지, 멀리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어릴적 엄마가 쌀을 조리할 때 돌멩이가 섞여 들어있었다. 조리를 흔들면 쌀은 조리 틈으로 빠져나가고, 남은 돌은 골라낼 수 있었다. 나의 인간관계도 그렇다. 가까이하면 나도 모르게 닮아간다. 멀어지면 잠깐은 공허하지만, 결국 나에게 유익하다.

사람들은 말한다. "왜 그렇게 예민해?", "왜 혼자만 힘들어해?"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눈치를 보지 않기로 했다. 나 자신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거절을 못 해 끌려다니다 보면, 늘 끝은 절벽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왜 감정을 숨겼을까. 왜 불편하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그런 후회가 들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나로 살기로 한 이유는, 그 모든 과정을 지나왔기 때문이다.


20대에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온갖 책을 읽었다. 백과사전처럼 사람의 마음을 알려주는 책이 있다면 다 외우고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반백 년을 살아온 지금, 이제는 안다. 주위 사람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행복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겨울처럼 혹독한 시기도, 여름처럼 지치는 시기도 있다. 하지만 그 계절은 반드시 지난다. 그리고 다시 봄이 오고, 가을이 온다.


나는 더는 누군가를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나를 이해하는 데 시간을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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