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김혜자 선생님의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을 보고 있다. '천국'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어쩐지 마음이 끌린다. 끝이라는 이미지보다 오히려 시작 같고, 마침표보다 쉼표 같은 그 이름. 무언가를 마친 이들이 머무는 평온한 장소라는 그 막연한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묘하게 따뜻해진다.
드라마에서 김혜자 선생님은 하늘나라로 향하는 길목에서 ‘어떤 나이로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인간 세상에서는 시간이 흐르며 아이에서 어른이 되고, 청춘에서 노년으로 접어든다. 하지만 천국에서는 단 하나의 나이를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그 나이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 선택한 그 순간의 나이로, 영원히 살아가는 것이다.
극 중 김혜자는 남편이 “그 나이가 참 예뻤다”라고 말한 80세를 선택한다. 반면, 남편은 젊고 건강했던 20대를 선택한다. 같은 삶을 함께한 부부였지만, 그들이 간직하고픈 시간은 달랐다. 나는 그 장면에서 문득 생각했다.
“나는 어떤 나이를 선택할까?”
“평생 변하지 않고 머물고 싶은 나이, 과연 내게 그런 나이가 있을까?”
돌이켜보면 나에게도 스스로 ‘가장 빛났다’고 느끼는 시기가 있다. 세상과 부딪히며도 기운이 넘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이 두렵지 않았던 24살, 혹은 25살 즈음.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고, 세상의 모서리를 모른 채 부딪히며 긍정과 패기로 살아가던 시절이다.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꽤 괜찮게 살아갈 자신도 있고, 아쉬웠던 몇 가지 선택은 더 나은 방향으로 고쳐보고도 싶다.
하지만 곧 또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영원히 그 나이로 살아야 한다면 어떨까?”
영원히 늙지 않는다면, 하루하루에 소중함이 사라지지 않을까?
계절이 바뀌어도 내 모습이 그대로라면, 주변의 변화만 계속 바라봐야 한다면, 오히려 슬퍼지지 않을까?
세상에는 그저 젊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날들이 있다. 아프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괴롭고 흔들리는 시기가 있다. 그런 나이로 영원을 살아야 한다면, 정말 그게 천국일까?
누군가는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선택할 것이다.
누군가는 가장 사랑받았던 시기를,
어떤 이는 후회 없이 치열하게 살아낸 그 한때를 고를지도 모른다.
혹은 어떤 사람은 누군가 대신 살아내고 싶은 시절을 고를지도 모른다.
고통 속에 떠난 이를 대신해, 그 인생의 한 페이지를 살아주고 싶은 마음으로.
드라마 속 천국에는 대체로 젊은이들이 많다.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청년들, 귀여운 아이들, 환하게 웃는 젊은 여성들. 그들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그들은 그때의 자신이 가장 자유롭다고 믿었구나.”
몸이 가볍고, 시간이 많고, 아직 실수해도 괜찮은 나이.
‘이제 시작’이라는 가능성의 계절에 머무르고 싶었던 마음이었겠지.
그렇지만 나는 아직 결정을 내릴 수 없다.
내가 가장 찬란했던 시절과
내가 가장 평온했던 시절과
내가 가장 사랑했던 시절은
서로 겹치지 않기 때문이다.
젊음은 불완전했지만 뜨거웠고,
노년은 불안하지만 단단하다.
한 시절만 고르고 살아야 한다면
나는 지금을 선택할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지난 시절의 나보다 더 많은 감정을 알고 있고, 더 많은 사람을 이해하며, 더 많은 사랑을 품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우리는 매일 조금씩 늙어가지만, 매일 또 조금씩 새로운 나를 살아간다.
천국이 있다면, 나는 그곳에서 내가 ‘시간을 견뎌낸 만큼의 깊이’를 간직한 나이로 머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