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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플갱어

하나를 만나면 하나가 사라진다.

by 신수현

도플갱어


그가 내 앞에서 웃는다

내 비명을 웃음처럼 꾸민다

내가 숨 쉬기도 전에

무대에 올라

내 이름을 삼킨다

사람들은 웃으며 말한다

"너랑 똑같더라"

"너보다 더 살아 있더라"

나는 웃었다

비명을 꿰매듯, 찢어진 나를 안고 웃었다

내가 짠 문장 위에

그는 피 묻은 손으로 서명했다

문장은 뜨거웠지만

나는 식어갔다

그는 내 그림자였고

나는 그의 허깨비가 되었다

모두가 그의 눈을 믿었다

나는 내 심장을 의심해야 했다

도플갱어는

내 살 속에서 웅크렸고

내 기억을 갉아먹으며 컸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부서진 손끝으로

사라질 나를 긁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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