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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을 보내며

아버지를 부를 수 없는 날... 어버이날은 슬픈 날...

by 신수현

아버지를 부를 수 없는 날 – 어버이날을 보내며


어릴 적 어버이날은 학교에서 지정해 준 날이라고만 생각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엔 어른들이 알려주는 대로 꽃을 만들고, 그날만큼은 부모님에게 기쁨이 되어야 한다는 날로 기억한다.


그렇지만,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부모님과 화합이 일어나지 않는 시기에는, 종이꽃을 달아 드리는 것조차 싫을 때도 있었다.

그 시간도 축복이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 모든 순간이 나에게 후회와 벌처럼 느껴진다.


누군가에겐 꽃과 편지, 예약한 음식점에서 따뜻한 식사가 준비되는 날이지만, 또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날이 되기도 한다.

더 이상 '어버이'라는 단어에 대답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어버이날. 그 이름이 가슴 깊이 울리는 날. 그날은, 부모를 불러도 대답 없는 사람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조용한 날이 된다.


어버이날의 유래는 1956년 ‘어머니날’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을 기리자는 의미로 시작되었고, 이후 1973년에 ‘어버이날’로 바뀌었다. 아버지를 함께 기리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실은 다른 나라에는 '어버이날'이라는 개념이 드물다.

미국은 5월 둘째 주 일요일에 ‘어머니의 날’을, 6월 셋째 주 일요일엔 ‘아버지의 날’을 따로 기념한다.


각각의 부모를 다른 날,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사랑이란 이름을 나누는 방식도 각국의 문화만큼이나 다르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성이 이벤트로 한국에 방문한 외국인 여성에게 빨간 카네이션을 전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그 외국인 여성은 눈물을 머금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카네이션 하나로 슬픔과 사랑과 배려를 나눌 수 있다.


우리는 왜 하나로 묶었을까?

함께 살아 있는 부모에게 한꺼번에 꽃을 달아 드리는 일은 어쩌면 효율적 일지 모른다. 하지만 어느 한 분이 먼저 떠난 가족에겐 이 날이 더할 나위 없이 쓸쓸하다.


생각해 보면 부모님의 생일 외에 자식으로서 꼭 기억해야 하는 날은 어버이날이 유일하다.

생일은 부모님 서로가 축하할 수 있다.

하지만 어버이날은 오직 자식만이 축하할 수 있는 날이다.

그렇기에 이 날은, 부모가 떠난 사람에겐 더욱 서글프다.


나에게도 어버이날은 오래전부터 부재의 날이 되었다.

아버지가 떠나신 지 10년이 되었고, 엄마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꽃을 살 이유도, 예약할 식당도, 메시지를 보낼 번호조차 없다.


거리는 카네이션으로 물들고, 가게마다 ‘부모님 사랑합니다’라는 문구가 걸리지만 나는 그 문구를 스치듯 지나친다.

보지 못한 사람처럼, 그리움마저 모른 척한다.

이해한다. 이 날은 살아 있는 이들에게 감사하라고 있는 날이라는 걸. 하지만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선물의 날’이지만 나에겐 떠난 사람을 부르지 못하는 날. 그래서 더 슬픈 날이다.


예전에 들었던 한 문장이 있다. “감사는 살아 있을 때 건네야 의미가 있다.” 살아계신 부모가 있다면, 그 말 한마디, 손 한 번 잡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잘 지내시냐고, 뭐 드시고 싶으시냐고, 그저 함께 있어줘서 고맙다고. 우리는 종종 너무 늦게 후회하니까.


시간은 나에게 벌을 주듯 천천히 흘렀고, 그 속에서 나는 늦은 후회를 배웠다.

이제는 아무리 좋은 것을 사도, 내 손으로 드릴 수가 없다.

말 한마디, 안부 한 번. 그런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큰 선물이었는지 이제야 안다.


어버이날은 살아계신 분들만의 날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부모가 떠났어도,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기억할 수 있고, 그 기억을 품고 살아가는 우리가 또 누군가의 어버이가 되기도 하니까.

부모는 존재가 아니라 시간 속의 감정이다. 그 감정은 꽃처럼 시들지 않는다.


올해 어버이날, 나는 일을 쉬게 되었다.

꽃을 드리기보다 실용적인 선물을 하기로 했다.

아버지 떠나신 지 십 년이 넘었고, 엄마는 이제 아흔을 바라보신다.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죽을 선물 했다.


엄마의 소원은 맛있는 밥보다, 형제들끼리 싸우지 않고 엄마 생일에 모이는 것이라고 했다.

부모님이 진심으로 원하시는 건 자식의 건강한 대답 한마디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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