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엘이 드레드 머리의 흑인?
최근 개봉한 인어공주 영화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가 어렸을 적 알고 있던 그 아리엘과는 다른 모습(?)의 실사화 주인공 캐스팅으로 인해 개봉 전부터 많은 논란이 있었는데, 이는 영화가 개봉한 다음에 그 이상의 논란이 계속해서 생기고 있다. 그리고 결국, 영화 상영 중에 관객끼리 싸우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다.
인어공주 영화를 관람하던 흑인부모와 백인부모가 싸우기 시작하고, 결국 4명의 성인이 영화 상영 도중 일어나서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싸움을 하게 되었는데, 해당 영상 (영상 보기) 이 트위터 등을 통해 퍼지면서 수많은 뉴스에 오르게 되었다.
이들이 싸우게 된 이유는 바로 백인 아이가 영화를 보며 한 말 때문이라고 한다. 백인 아이는 영화를 보며 인어공주를 항해 "괴물 같다"라고 말을 하였고 앞자리에서 영화를 보고 있던 흑인 부모는 참지 못하고 일어나 뒤를 보고 욕을 하며 항의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백인 아이의 부모님이 맞서며 결국 큰 싸움으로 번지게 되었다. 영화관 곳곳에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일부 관객들은 영화를 볼 수 없다며 환불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영상을 본 여러 사람들은 '실제로 집에서 보던 아리엘 (애니메이션 아리엘)을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다', '등장할 때 깜짝 놀라서 공포영화가 맞다', '미리 아이에게 흑인 인어공주가 나올 것임을 설명하지 않은 부모의 잘못이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인어공주의 실사화 캐스팅이 공개되자 온라인에서는 #NotMyAriel이라는 해시태그로 캐스팅에 반대하는 온라인 운동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고, 인어공주 실사화 영화는 Horror Movie 라며 영화 속 아리엘 역을 맡은 Halle Lynn Bailey (핼리 베일리) 에게 수많은 욕설을 포함한 비판 역시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디즈니 영화는 미국의 영화 산업 및 문화 콘텐츠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인어공주, 백설공주, 알라딘 등의 애니메이션 영화들은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며 많은 사람들의 동심 속에 기억되어 있는 영화들이다. 그렇기에 실사화가 된 영화의 캐스팅을 보면 NotMyAriel 이 왜 나오는지 이해가 가기도 한다. 디즈니가 1989년에 선보인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는 대성공을 거두며 전 세계에서 2억 3500만 달러 (3120억 원)의 이익을 거두었다. 월트 디즈니의 사망 이후 침체기를 겪고 있던 디즈니는 이 애니메이션으로 인해 제2의 전성기를 열었고, 블룸버그는 "인어공주가 없었다면 지금의 엘사도 없었다" 라며 인어공주 작품의 중요성을 평가하기도 하였다.
이전의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캐릭터와 인물들을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목적으로 기존 캐릭터와는 다른 피부색의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있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는데, 디즈니는 이어서 백설공주 실사 영화 역시 콜롬비아계 배우를 발탁하며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해 9월 공개한 피노키오에서도 요정 역으로 흑인 배우가 캐스팅이 되었고, 지난달 개봉한 피터팬의 팅커벨 역시 흑인 배우가 연기하였다. HBO맥스의 경우 영화 해리포터를 TV시리즈로 기획 중인데 해리포터 영화의 캐릭터토 헤르미온느 역할 역시 흑인을 캐스팅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넷플릭스의 클레오파트라라는 역사 다큐멘터리에서도 클레오파트라를 흑인 배우 아델 제임스가 연기하며 화제가 되었는데, 실제 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 혈통 백인으로 알려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존의 모든 인물과 캐릭터를 흑인 배우가 연기하는 현상을 Blackwashing (흑인화)라고 한다. 과거에 모든 캐릭터를 백인이 연기했던 관행이 Whitewashing (백인화) 라며 비판이 되었는데 이제 반대가 된 것이다. 문화 콘텐츠 업계에서는 '백인 중심의 콘텐츠 업계가 권력 재분배가 되고 있다'라는 의견과 '선을 넘었다'라는 의견이 대립 중에 있다. 논란이 계속되자 밥 아이거 디즈니 대표이사는 "콘텐츠의 다양성은 매우 중요하며 회사의 핵심 전략이다"라고 강조하였으나 블랙워싱은 계속해서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기존 캐릭터의 모습과 상관없이 흑인을 캐스팅하는 것은 다양성이 아닌 블랙워싱이다'라는 주장과 함께 버락 오바마 영화의 오바마역에 라이언 고슬링 (백인 배우), 넬슨 만델라 영화에 만델라를 백인으로, 무하마드 알리 영화에 알리를 마크 웰버그 (백인 배우), 리오넬 메시 다큐멘터리에 메시를 흑인 배우로 하는 포스터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매우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배우는 원작 캐릭터를 최대한 살리고 스토리에 집중하며 연기해야 한다 라는 생각이 있다. 특히 이번 아리엘은 흑인 특유의 땋은 머리인 드레드록스 스타일을 하고 있는데, 인어공주 촬영을 위해 베일리의 머리가 물에서 뜨지 않아 중간중간 느슨하게 조금씩 풀었어야 했으며 이런 헤어스타일을 위해 최소 2억 원을 썼다고 하는데, 이런 머리스타일을 고집한 이유에 대해서 베일리는 "흑인인 내게 이 머리카락은 우리의 문화와 나 자신을 정의하는 중요한 특징이기 때문에 지키고 싶었다"라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핼리 배일리는 인어공주 원작의 아리엘을 연기하는 역할이었지 본인의 정체성을 지키는 역할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나는 다양성을 매우 지지한다)
하지만 이렇게 블랙워싱이 시작된 데에는 사실 다양성보단 '돈'이 엮여있다. 영화 및 미디어 콘텐츠 산업에 다양성을 기반으로 블랙워싱 등 논란이 계속되고 있으면서도 캐스팅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바로 OTT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이 있는데, OTT의 등장 이후 사람들의 '콘텐츠 이용'이라는 개념 자체가 많이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OTT로 인해서 이제 전 세계의 인터넷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영화, 드라마 등의 미디어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이러한 구조의 문제는 바로 고객들이 구독료를 매달 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를 위해 OTT 업체들은 전 세계 고객의 제각각 취향을 맞출 수 있는 다양성과 많은 종류의 콘텐츠를 갖춰야 한다. 일부 통계에 따르면 미국 등 영어권 국가에서의 영어권 콘텐츠는 80~85% 를 차지하고 있으나 남미에서 북미 콘텐츠의 비율은 약 48% ~ 52% 라고 한다. 우리나라와 일본 등 아시아 지역 역시 북미 콘텐츠의 점유율은 35% 뿐이다. 기존 백인 중심의 북미 콘텐츠로는 전 세계 고객을 대상으로 구독료를 매달 받아야 하는 OTT 서비스가 생존하기에 절대적인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가 지난달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넷플릭스의 미국 영화, 시리즈에서의 주인공은 47.5%가 백인이 아닌 배우들이었는데 이는 2018년의 28.4%에 비하면 이젠 백인이 아닌 배우들이 주연을 차지한 미디어 콘텐츠들이 많은 수준으로 증가한 것이다.
디즈니 플러스라는 OTT 사업으로 넷플릭스와 경쟁하는 디즈니는 아리엘을 흑인 배우로 캐스팅함으로써 전 세계 흑인 고객을 확보한 샘이 되는 것이다. 특히 미국 영화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월 1회 이상 영화를 보러 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흑인)의 숫자는 2012년 이후 27%가 상승했는데 같은 기간 동안 백인 관객은 21% 감소했다고 한다. 흑인 배우가 더 많이 등장할수록 흑인 관객이 압도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그렇기에 OTT는 블랙워싱과 같은 것을 정면돌파 하고 있는데, 넷플릭스는 2020년에 공개한 1800년대의 영국 귀족 사회를 배경의 드라마 '브리저튼'에 흑인 귀족을 등장시키며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최근엔 아예 흑인 영국 왕비를 주인공으로 하는 샬럿 왕비: 브리저튼 외전을 공개하였다. 하지만 비판과는 다르게 이 작품은 글로벌 인기 순위 1위에 올랐다. 사업적으로 보면, 아리엘의 역할로 흑인 배우를 캐스팅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을 수도 있다.
다양성은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 다양성의 존중을 위해 기존의 콘텐츠에 그냥 흑인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랑을 받은 마블의 블랙팬서처럼 흑인 및 그동안의 문화콘텐츠 소수자를 위한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하고 개봉하는 게 더 좋은 방향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이유를 막론하고 인종, 문화 등 성인들의 갈등으로 인해 인어공주 영화를 즐기지 못하고 울어야 했던 많은 아이들을 생각하면 참 유감이다. 가족과 함께 즐겁게 인어공주를 관람하는 것을 상상하며 갔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