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부로 시작해서 CTO까지 승진하다
코닥이라는 회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70~90년대에 걸쳐 미국의 가장 혁신적인 기업 중 하나로서 20세기의 기업에 빠지지 않는 이스트먼 코닥 은 사진 필름과 사진기 제품으로 유명하다. 코닥은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혁신 기업으로서 20세기의 애플 이라고도 불린다. 이 코닥이라는 회사의 청소부로 직장생활을 시작하여 코닥의 CTO까지 오른 한 여성이 있다.
1980년대에 Gail Evans (게일 에반스)라는 여성은 뉴욕에 있는 Nazareth College를 다니며 코닥 회사 326동 건물의 청소부 일을 하고 있었다. 게일은 청소부로 일하며 야간대학에서 컴퓨터 수업을 듣고 있었고, 이를 알게 된 게일의 상사는 다른 직원들에게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한 재고 관리 법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1987년 게일은 학교를 마친 뒤, 코닥의 청소부에서 IT 부서로 발령되면서 본격적으로 청소부가 아닌 IT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렇게 약 10년 뒤인 1999년, 게일은 코닥의 CTO (최고 기술담당 이사)의 자리에 올랐다.
게일은 흑인 여성이었고, 80년대 미국 사회에서 흑인 여성의 삶은 절대로 평탄하진 않았다. 그리고 게일이 CTO 가 되었을 때, 흑인 여성이 기술 기업의 경영진이 된다는 것은 거의 전대미문과 같은 일이었다.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CTO라는 자리가지 올라갔고, CTO 로서 근무하면서도 얼마나 많은 편견과 어려움을 겪으며 근무하였을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게일은 본인은 항상 기술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하며, 인터넷이 시작되었을 때에 그녀는 이미 '나는 기술팀을 이끄는 리더가 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코닥의 CTO 및 CIO를 지낸 게일은 이후 Bank of America, HP, Microsoft, Mercer 등 다양한 기술 기반 기업들의 경영진으로서 업무를 수행하였고 현재는 디즈니의 Executive Vice President, Chief Digital and Technology Officer 로서 근무하고 있다.
게일은 본인이 성공적인 커리어를 만들어 가면서 도움을 준 소중한 사람들을 'Angels'라고 한 인터뷰 (anitap.org)에서 표현했는데, 가장 깊게 생각하는 Angel 은 코닥에 있을 시절 그녀를 이끌어준 Billy Cates라는 사내 멘토였는데, 청소부였던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IT 부서로의 발령 및 경영진으로 계속해서 커리어를 올라가기 위해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이라고 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더 이상 게일과 같은 기적과 같은 사례는 현시대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게일이 근무하던 시절 (80년대) 기업 문화는 지금과는 굉장히 달랐다. 이때의 기업들은 청소부와 같은 노동자 역시 모두 자사 직원으로서 채용하여 대우하였다. 하지만 미국 기업들은 점점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핵심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위탁한다'라는 경영 철학에 따르면서 기업 구조를 간소화하기 시작하였는데, 바로 '주주에게 최대한의 이윤을 돌려준다'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이전보다 훨씬 더 중요시되면서 생겨났다.
게일이 근무하던 시절 코닥이 창출한 일자리 중엔, 단순 업무 노동자들도 정규직으로서 일반 직원과 같은 보수를 지급받으며 업무에 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회사들의 정책 덕분에 코닥의 본사가 위치한 로체스터라는 곳엔 두 세대에 걸친 탄탄한 중산층이 자리 잡게 되었는데, 기업의 성장에 따라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지역 경제가 뒷받침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또한 단순 업무 노동자 역시 배움의 기회는 있었고, 자사의 정규 직원이기에 실력에 따라서 인사 발령 역시 가능했다. 게일의 능력은 코닥의 기업 환경을 만나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물론 청소부로 시작해서 대기업 CTO로 승진한 사례는 거의 없으며 게일의 사례는 굉장히 이례적인 성공 신화이다. 하지만 게일의 성공 신화가 아니더라도, 코닥을 비롯한 여러 기업들은 창고 노동자, 청소 노동자 등 기업에 고용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정적인 고용 환경을 제공하였고, 이에 따라 안정적인 중산층이 경제를 탄탄히 받쳐주는 자본주의 사회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이 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사례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의 기업 및 산업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이윤을 창출한다 라는 목표로 최대한 적은 직원을 고용하며 높은 매출과 큰 이윤을 남기는 산업 구조가 되었다. 청소 등과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는 아예 채용을 하지 않고 위탁 업체를 사용한다. 위탁 업체의 노동자들은 당연하게도, 안정적인 고용환경과 보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애플이 실리콘벨리에 지은 새로운 본사에서 일할 직원을 약 23,400명으로 예상하였으며 이들의 평균 연봉은 약 10만 달러 (약 1억 2천만 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30년 전 코닥의 로체스터 오피스에만 6만 명가량의 직원이 고용되어 있었고, 이들의 평균 연봉은 현재 달러 가치로 환산하면 약 7만 9천 달러 (연봉 약 9천만 원)이었다는 것을 비교해 보면 지금의 노동시장 양극화가 얼마나 심해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지난해 애플, 알파벳, 페이스북 세 개의 기업이 올린 이익은 400조 원에 육박한다고 하며, 이 세 개의 회사에 고용된 직원 수는 약 20만 명 정도 추정된다. 1993년 당시 미국에서 기술로 가장 성공한 기업 세 곳을 뽑는다면 코닥, IBM, 그리고 AT&T였는데, 이 세 회사가 당시 고용한 직원 수는 약 67만 명이었다. 현재의 애플, 알파벳, 페이스북 보다 3배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고도 이들이 거둔 이익은 물가 상승을 감안하고 약 27% 적었다. 3배가 넘는 인원을 고용하고도 남긴 이익이 3배 적은 인원을 고용한 세 개의 회사와 약 27%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다.
물론 기술의 발전으로 자동화가 이루어지며 많은 일자리가 없어진 것 역시 사실이나, 중요한 차이는 바로 예전 대기업은 모든 노동자를 직접 고용을 했다는 점이 오늘날과 다른 점이다. 현재는 청소, 배송, 등 수많은 단순 노동 업무는 모두 위탁을 하고 있으며 결국 이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추거나 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요즘 많은 기업들이 ESG에 대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데, 비슷한 맥락으로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고민해 본 다면, 게일의 신화는 기업들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사항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