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과 집값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가볍게 시작한 이야기가 제법 심각해져 논쟁 비슷하게까지 되었던 거 같다. 집 없는 사람 둘이 뭘 그렇게 치열하게 토론했나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집이 우리 세대에게 참 중요한 문제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동생은 장롱면허이지만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있고, 어떻게 해서든 집을 마련하고 싶어 한다. 반면, 나는 십수 년 전 CFA 시험에서 곁가지로 다룬 것이 부동산 지식의 전부였고, 집은 충분한 여력이 있을 때 사야 한다고 생각한다.(좋은 집주인 분을 만나 집 없는 서러움을 잘 모르는 걸지도 모른다.) 동생은 시장을 보고 있었고, 나는 본질가치를 중시하였다. 왜곡된 시장에서 시장가치와 본질가치는 평행선을 그을 수밖에 없기에, 우리의 의견도 서로 만날 수 없었던 듯싶다.
시장 가격은 본질가치(intrinsic value)로 회귀한다. 시장경제를 믿는다면 말이다. 금융시장이던, 실물시장이던, 부동산 시장이던 마찬가지이다. 수요와 공급이 알아서 균형점을 찾아준다. 만약, 시장 가격이 본질가치보다 높다면(고평가 되어 있다면), 팔고자 하는 사람이 사고자 하는 사람보다 많아져 가격은 떨어지게 된다. 반면, 시장 가격이 본질가치에 못 미치면(저평가되어 있다면), 사고자 하는 사람이 팔고자 하는 사람보다 많아져 가격은 오르게 된다. 전통적인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집값도 결국 집이 가진 본질가치로 돌아갈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집의 본질가치는 무엇일까? 집을 소유하면서 얻을 수 있는 효용(benefit)의 크기이다. 이게 어렵다. 같은 집이라도 얻을 수 있는 효용은 각기 다르다. 정량화하기 어렵다. 재무적인 접근이 필요한 이유이다. 숫자의 세계에서 본질가치는 자산이 향후 발생시킬 수 있는 현금에 기반하여 평가된다. 복잡한 계산은 차치하고 직관적으로 접근해 보자. 시가 10억짜리 아파트가 있다고 하자. 월세는 200만 원이다.(보증금은 1억 원이다.) 부동산 수익률을 5 %로 가정할 때, 이 집의 본질가치는 대략 6억 원 정도로 계산된다. 간단히 생각하면, 5억 원 정도를 투자하면 월 200만 원(정확히는 2,083,333원이다. 너무 피곤하게 살지는 말자)의 수익을 올릴 수 있고, 이에 보증금 1억 원을 더하면 6억 원이 나온다. 집값 10억 원은 4억 원이 고평가 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집값은 수십 년째 오르고 있다. 집값에 거품이 끼어있다고 말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집을 사려고 한다. 아래를 보지 않는 집값 그래프는 '집 사서 부자가 되자'는 허황된 믿음만 견고하게 해 준다. 시장은 자정기능을 잃은 지 오래다. 왜곡되었다. 하지만 의문이 든다. '왜곡'이라는 단어는 왜곡되기 전 상태, 즉 본래의 상태가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왜곡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십 년간 왜곡된 시장에 기준점이 있기는 한걸까? 수십 년간 왜곡된 시장을 왜곡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왜곡되었다고 생각하는 상태가 정상은 아닐까? 부동산 시장은 왜곡되었다고 하기에도 조심스럽다.
'왜곡'을 '왜곡'이라 말하기 어렵게 한 일등공신은 아마도 전세제도일 것이다. 우리에겐 친숙한 용어이지만, 국경을 넘어서면 전세를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전세제도는 집을 사고자 하는 사람에게 레버리지를 준다. 집값의 10~20% 정도의 돈으로도 집을 살 수 있게 해 준다. 가격이 올라갈 때는 좋다. 적은 돈을 투자해서 적지 않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문제는 집값이 떨어질 때이다. 투자한 돈 그 이상을 잃어버릴 수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도 이렇게 시작되었다.
솔직히 두렵다. 집을 사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보다는 부자가 되는 길은 집을 사는 것밖에 없다는 우리 세대의 믿음이 두렵다. 서운하기까지 하다. 물론 목표한 기간 내에 집을 사기 위해 조금이라도 아껴보려는 동생의 모습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더 소중한 것을 포기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인생의 마지막에 '그때 그 집을 샀어야 했는데'하는 후회를 할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